바로 오늘, 6월 2일은 '참교육의 불꽃' 김철수 열사가 보름간의 병상 투쟁 끝에 숨을 거둔 지 35년이 되는 날이다. 1991년 5월 18일, 전남 보성고 운동장에서 자신의 몸을 사른 고등학생은 검게 그을린 채 "이런 잘못된 교육을 계속 받을 거냐?"라며 절규했다.
생사의 기로에서 물 한 모금으로 버티며 그가 남긴 마지막 육성 유언은 오늘날 우리의 가슴을 여전히 후벼 판다.
"학교에서는 자기만을 위한 사회를 만들기를 강요하고 있습니다. 학생들을 로보트로 만들고 있습니다. 저는 엄연한 학생입니다. 제가 왜 그런 로보트 교육을 받아야 합니까? 저는 더 이상 그런 취급을 받느니 지금의 교육을 회피하는 게 현명한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활자로 배운 민주주의, 그러나 외면할 수 없는 역사의 무게
그 뜨겁고 참혹했던 봄, 필자는 고작 여섯 살의 어린아이였다. 열사의 죽음과 그 시절의 절규를 직접 목격하거나 온몸으로 경험하지 못한 세대이다.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입시 환경에 순응하며 자랐고, 교정 가득했던 최루탄 가스 냄새와 치열했던 민주주의 투쟁은 활자로 배운 세대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시절을 직접 겪지 않았다고 해서, 18세 소년의 죽음이 남긴 무게가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다. 당시 보성고 학생 1,200명과 전남·광주 지역 고등학생들이 시신 탈취를 막기 위해 사수대를 꾸려 전남대병원을 지켰던 역사, 폭우 속에서 치러진 국민장 행렬이 백운동 까치고개를 넘어 전남도청으로 향했던 기록은 시대를 넘어 우리 모두에게 거대한 정신적 유산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세대를 넘어 이어지는 기억, 그러나 여전한 무한경쟁의 굴레
그 시절을 경험하지 못했지만, 세월이 흘러 한 아이의 부모가 되고 교육운동단체 활동가가 된 지금, 필자는 열사가 거부하고자 했던 '로보트 교육'의 실체를 누구보다 뼈저리게 마주하고 있다.
그렇게 김철수 열사가 떠난 지 어느덧 3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고, 기일 전후로 매년 추모제가 열린다. 하지만 매년 마주하는 추모제 자리는 쓸쓸하기만 하다. 평생 자식의 제사상을 챙기며 눈물 흘리시던 부모님들조차 이제는 참석이 어려워진 지금, 추모제는 몇몇 옛 친구들과 선후배들만이 외롭게 지키고 있어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직접 경험하지 못한 세대의 미안함과 안타까움이 더해지는 이유이다. 그 소중한 목숨을 내던지며 열사가 외쳤던 이야기는 결코 끝난 과거가 아님에도 말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여전히 기득권에 의해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 특히 '학벌사회'라는 거대한 괴물은 권력을 독점한 채, 세상의 주인이어야 할 시민들의 목을 죄어온다. 이 땅의 교육은 청소년들을 여전히 무한 경쟁의 벼랑 끝으로 내몰며 또 다른 비극을 양산하고 있다. 35년 전 소년이 거부했던 '로보트 교육'은 오늘날 한층 더 복잡해진 입시전형이라는 가면을 쓴 채, 학생들을 통제하거나 경쟁시킬 뿐이다.
참교육 실종, 비방만 남은 '초대 통합교육감 선거'
더욱 참담한 것은 바로 내일(6월 3일), 전남·광주의 역사적 행정통합에 따라 치러지는 '초대 통합특별시교육감 선거'의 풍경이다. 320만 시도민의 미래 교육을 책임지겠다는 거창한 포부들이 쏟아지지만, 정작 참교육의 정신과 교육 대전환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실종되었다. 오직 선심성 현금 공약 연발과 특정후보의 카지노 도박 의혹 관련 볼썽사나운 법적 고발, 네거티브만이 선거판을 가득 채우고 있다.
수조 원의 교육 행정을 이끌겠다고 나선 거물 후보들 중, 김철수 열사의 추모제 자리를 찾거나 그 정신을 기린 후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선거조직과의 연대에 목을 매고 표 계산에만 분주한 이들에게, 35년 전 고등학생이 목숨 바쳐 울부짖었던 '민주주의', '인간화 교육'의 가치는 그저 잊힌 과거이자 거추장스러운 유산일 뿐인 걸까?
로보트 교육을 부수고 인간의 등불을 밝히는 우리의 의무
'참교육 실현'을 염원하던 김철수 열사의 외침이 허공으로 흩어지는 바람이 되게 둘 수는 없다. 그 시절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라 할지라도, 오늘 열사의 기일을 맞아, 그리고 내일의 중요한 선택을 앞두고 우리가 다시 힘과 의지를 모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거대해진 행정 권력과 기득권 중심의 학벌사회에 맞서, 학생들을 로보트로 만드는 입시 지옥을 깨부수고 인간다운 교육의 등불을 지켜내는 일. 그것은 직접 경험한 세대만의 몫이 아니다. 내일의 투표를 넘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끝까지 이어가야 할 진정한 시대적 연대이자, 세상을 떠난 열사 앞에 부끄럽지 않게 살아남은 자들의 의무일 것이다.
“회장 힘으로 꼭 이루고 싶은 일(공약)이 있어서 학생회장이 되는 걸까요?” 아니면, “회장이 되기로 마음먹었는데, 학생 표를 어떻게 낚을까 고민하다 공약이 나오는 걸까요?”
중·고등학교 학생회 임원들에게 학생자치를 강연할 때 던지는 질문이다. 학생들은 머뭇거리다가 ‘전자’라고 답한다. 어떤 공약으로 당선되었는지 까먹을 정도로 실제 현실은 ‘후자’이지만, ‘전자’여야 함을 깨닫기 때문이다.
대학 시절, 선거운동본부장을 한 적이 있다. 한해 학생회를 평가한 후 의견 그룹이 나뉘면 각각 선거운동본부를 구성하고, 조직이 꾸려진다. 후보를 위해 선거운동본부가 있지 않고, 선거운동본부가 지향하는 가치를 위해 누군가 후보 역할을 맡는 구조.
그런 경험을 겪고 나니 선거를 단지 ‘누구를 뽑는가’로 보던 시야가 넓어졌다. 선거란 주권자들의 언어가 경청되는 축제이다. 공동체를 어떤 가치로 움직일 것인가? 무엇이 가장 중요한 이야기거리이어야 하는가? 고민의 결과가 공약이 된다. 후보란 ‘자신을 수단으로 선본의 지향 가치를 구현하는 사람’일 뿐이었다.
이번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교육감 선거에서도 ‘누가 당선되면 좋을까?’보다 통합 시대의 첫 교육감은 어떤 시대 정신을 위해 자신을 기꺼이 수단화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할까? 고민하게 된다. 그런데 교육감 선거 풍토는 매우 척박하다. 정당의 깃발은 제거되는데, 교육자치의 언어보다 정당 정치의 문법으로 움직인다. 정책 토양은 열악한데, 정치 브랜드도 표시할 수 없으니, 아쉬운대로 ‘보수’와 ‘진보’라는 대립쌍 중 하나로 자신을 수식한다. 어렵사리 민주, 진보 또는 보수 등 간판이 걸린 가건물을 세우고 단일화를 한다. 하지만, 어떤 교육가치를 어떤 정책으로 실현할지 충분히 전제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단일화는 가치의 연대라기보다 진보나 보수 스티커를 누구에게 붙여줄지 고르고 후보를 띄우는 흥행 기술이기 쉽다. ‘자, 이제 우리는 이 가치를 함께 이룰 동지이니 누가 되어도 좋다’고 서로를 환대하기보다 룰을 두고 다투다 깨지기 쉽다. 이때, 시민은 주권자가 아니라 동원자가 된다.
가치 기반이 부실하니 가건물 안에서는 짙은 색을 내고, 밖에서는 옅은 색을 내는 카멜레온이 될 수도 있다. 진보 스티커를 붙이고 “입시도 잘 챙기겠다”는 류로 자랑하는 일과 그 반대의 경우가 얼마든지 가능하다. 교육의 가치를 위해 자신을 수단화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당선을 위해 교육의 가치를 수단화하는 것이다.
교육감 후보에겐 난제도 많다. 수치로 보기 힘든 교육 성과를 임기 내 ‘볼 수 있는 형태’로 약속하려는 유혹에 흔들리고, 약간의 갈등도 사법적으로 푸는 일이 만성이 되어버린 학교, 냉소와 회의에 몰린 교사, 입시 욕망 안에서 공교육과 사교육을 쌍둥이로 보는 학부모에게 어떤 언어로 교육 희망을 꿈꾸게 할지 난감하다. 고상한 말 백 번 하는 것보다 입시욕이라도 화끈하게 부채질하겠다는 후보도 드물지 않다.
그런 상황에서 통합으로 지어질 교육 자치의 집에 무엇을 넣고, 무엇을 뺄지 교육공동체는 걱정스럽고 혼란스럽다. 선거의 시계는 쉴 새 없이 돌아가지만, 우리에겐 ‘교육은 무엇인지’, ‘학교는 무엇을 하는 곳인지’ 합의된 설계도가 필요하다.
이 설계도에 ‘AI시대에도 어떻게 자본에게 매력적인 인간이 될 수 있을까’ 다그치는 교육이 아니라, ‘AI로 일군 자본과 여유를 인간들이 어떻게 누리고, 생태와 평화의 힘으로 바꿀 수 있을까?’를 상상하는 용기가 바닥에 깔려 있으면 좋겠다. 이런 용기가 새 시대 교육을 짓는 건축정신이 되면 좋겠고, 이를 K-edu라 부르고, K-pop처럼 세계를 물들일 수 있는 사람이 교육감이 되면 좋겠다. 여러 가지 정책을 만들어 학교의 숨통을 조이는 사람보다 학교에 치유와 성찰, 회복을 위한 재량과 여유를 주고, 그 숨결로 배움의 씨앗을 싹틔우려는 사람이면 좋겠다. 통합으로 커진 자신의 힘을 기꺼이 견제받고, 시민과 나누는 상상을 즐겁게 하는 사람이면 좋겠다.
최근, 광주교육시민연대는 의제별 시민사회 원탁토론과 정책회의 등을 거쳐, 6대 영역 15가지 교육정책을 만들었다. 5·18민주화운동 제46주기, 이 설계도로 새집을 튼튼하게 지어줄 목수가 누구인지 묻기 위해 네 분의 교육감 후보에게 오늘 전달한다.
건강한 정신과 몸을 가진 목수가 행복하게 동그라미를 치면 좋겠다. 그러면 광주교육시민연대는 함께 벽돌을 짊어지겠다는 다짐으로 힘찬 박수를 보낼 것이다.
※2026년 5월 26일, 오후 5시. 광주광역시 시민사회지원센터(시민마루)에서 교육감 후보 정책 협약식이 열린다.
2022년 강원도 현장체험학습 중 발생한 안타까운 학생 사망 사고와 관련해, 지난해 11월 2심 재판부마저 인솔 교사에게 유죄(선고유예)를 선고하면서 교육 현장의 현장체험학습이 급격히 위축되고 있다.
특히 초등학교의 감소세가 두드러진다. 2025년 광주지역 초등학교의 체험학습 실시율은 소풍 79.1%, 수련 활동 72.5%, 수학여행 90.2%로 나타났으며, 올해는 이 수치가 더욱 떨어질 전망이다.
교육 활동 중 발생한 사고에 대한 교사의 책임을 덜어주고자 지난해 6월 학교안전법이 시행되었다. 하지만 전남의 한 병설유치원 체험학습 사망 사건에서 해당 면책조항이 소급 적용되지 않은 채 올해 1월 유죄 판결이 내려지면서, 교사들의 불안감은 여전히 해소되지 못하고 있다.
필자의 자녀가 다니는 학교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올해 현장체험학습 실시 여부를 두고 교사 대상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무려 82.9%가 ‘미실시’ 의견을 냈다. 결국 학교운영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수학여행 등 교외 체험학습을 전면 취소하고, 교내 1일형 체험학습으로 대체하기로 결정했다.
아이들의 설렘 지워버린 어른들의 통보
학부모와 학생의 2025년 현장체험학습 만족도가 96.1%에 달할 만큼 교외 체험학습의 필요성은 명확했다. 그럼에도 무거운 법적 책임과 불안감을 온전히 감당해야 하는 교사들에게 교외 체험학습을 강요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가에 대한 깊은 고민이 뒤따랐다. 결국 학부모로서 교사들의 고충을 이해하고 그 판단을 존중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정작 가장 중요한 ‘학생들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못했다는 점은 뼈아프다. 논의 과정에 참여하지 못한 채 어른들의 결정만 일방적으로 통보받는다면, 학생들에게는 깊은 상처로 남을 수 있다. 매년 설레는 마음으로 손꼽아 기다리던 소풍, 초등학교 시절 가장 소중한 추억이 될 수학여행이 하루아침에 사라진 상실감은 결코 가볍지 않다.
물론 교사들이 겪는 불안과 안전 확보를 위한 과도한 업무 부담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단지 안전을 이유로, 혹은 형사처벌의 위험을 피하고자 형식적인 절차를 통해 체험학습을 취소·변경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교육공동체가 함께 이 문제를 공유하고, 책임을 나누며, 배움의 방식을 민주적으로 재구성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우리는 이미 이러한 연대와 공유의 경험을 가지고 있다. 학교 급식 파업 당시, 학생과 학부모는 간편식이나 도시락으로 점심을 해결해야 하는 불편을 겪었다. 하지만 상당수 교사들의 계기교육을 통해 조리 종사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이해하게 되었고, 이는 교과서만으로는 얻기 힘든 ‘살아있는 현장교육’으로 평가받았다.
악성 민원에 따른 서이초등학교 교사 사망 이후 이어진 ‘공교육 멈춤의 날(대규모 교사 집회)’도 마찬가지다. 학교장 재량휴업과 교사들의 연가·병가 사용으로 학사 운영에 차질이 빚어졌지만, 교육공동체는 이를 함께 감당했다. 학생, 학부모, 교사 간의 사전 의견 수렴과 가정통신문을 통해 교사들의 행동이 지니는 의미를 공유했고, 이는 오히려 교육공동체 내 신뢰를 회복하는 계기가 되었다. 참고로 필자 역시 공교육 멈춤의 날에 동참하는 의미로 교외체험학습을 신청하여, 자녀와 같이 집회에 동참한 바 있다.
‘불편’을 ‘배움’으로…연대의 마법 필요
과거에도 교육의 참된 방향을 지키기 위해 교사들은 학생·학부모와 함께 험난한 선택을 마다하지 않았다. 2008~2009년 이른바 ‘일제고사(전국단위 학업성취도평가)’를 반대하며 교사들이 연가와 병가를 냈고, 학생과 학부모는 미인정 결석을 감수하며 현장체험학습을 떠났다. 당시 일부 교사들은 징계를 불사하면서까지 학생들과 함께 체험학습에 동행했다.
전국의 학생들을 한 줄로 세우고 경쟁으로 내모는 시험장보다, 학교 밖 세상에서 직접 경험하며 배우는 것이 훨씬 더 ‘교육적’이라는 굳건한 믿음 때문이었다. 이렇듯 현장체험학습은 교육과정의 부수적인 활동이 아니라, 교육의 본질을 지키기 위한 적극적인 선택이자 실천이었다.
한때 교육을 지키기 위한 수단이었던 현장체험학습이, 이제는 형사처벌의 덫을 피하기 위해 스스로 포기해야 하는 활동으로 전락해 버린 현실이 참으로 씁쓸하다.
현장체험학습의 존폐와 추진 방식은 단순한 행정적 절차나 선택의 문제로 남겨둬서는 안 된다. 그 결정 속에는 학교가 지향하는 교육의 철학과 방향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결정을 더 신중하고, 더 민주적이며, 무엇보다 가장 ‘교육적인’ 방식으로 학생·학부모·교사가 함께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놀토’가 있던 시절, 교장은 토요 프로그램사업을 신청했다. 토요일도 출근하는 부부의 아이를 학교가 돌보는 사업이었다. 프로그램 신청자가 적다는 건 주5일제가 부드럽게 착륙하고 있다는 증거일 텐데, 우습게도 교장은 멀쩡한(?) 애들도 학교에 나오도록 담임을 압박했다. ‘어떻게’ 사업을 빛낼까 궁리하느라 ‘왜’ 사업을 하는지 뭉개버린 것이다.
학교엔 늘 돈이 궁했다. 새학기 학급 꾸미기를 할 때 교사는 몸과 마음을 써야 했지만, 주머니도 털어야 했다. 학생에게 잡다하게 돈을 걷는 일도 많았다. 그러다 보니, 교육청 예산 따오기를 ‘학교 또는 학생을 위해서’라고 자랑하기 쉬웠다. 하지만, 연구, 시범사업을 한답시고, 예산이 느는 것이 반가운 적은 없다. 이런 예산이 살림이 되기보다 굴레가 되고, 힘이 되기보다 짐이 된다는 걸 일찌감치 알았기 때문이다.
교육이 교육으로 되새김질 되는 문화도 척박한 데다가, 교육의 밭을 땀 흘려 일군 사람보다 관계를 속되게 가꾸는 일이나 성과를 행정적으로 부풀리는 일에 능한 사람이 관료나 교장이 되는 경우가 흔했다. 시범사업이란 ‘교육 관료의 삽질 정책 + 예산의 보람을 수치로 증명하는 교장 + 본업에 집중할 여유를 빼앗기는 교사’로 삐딱하게 보게 되었다.
교장들은 대체로 시범사업을 좋아했다. ‘경쟁 시대이니 뒤처지지 말자’는 수준의 논리로 ‘교원평가제 선도학교’를 신청하기도 했고, 디지털 교과서를 내리꽂는 정부에 비판과 걱정이 한가득 쌓이는 중에도 사업비에 손을 뻗기도 했다. 학생들이 아침에 몇 명쯤 왜 밥을 굶는지 알 마음도 없으면서 간편식 사업에 욕심을 부리기도 한다. 생긴 돈만큼 교육이 깊어지기보다 행정은 무거워졌다.
그래서, 학생 책값과 밥값, 교사 땀값만 국가가 책임진다면 텐트에서 가르치고 배워도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특성화고에서 처음 근무하게 되었을 때, 교육청에서 받는 예산 이외에 고용노동부, 산업자원부, 중소벤처기업부 등 산업 부처에서 10억 가까운 돈이 들어온다고 해서 놀란 적이 있다. 그런데, 솔직히 그만큼 교육에 추진력이 생기겠지 하는 기대보다 돈을 끌어오는 힘, 그 보람을 증명하느라 교육자가 아니라 회사원으로 살면 어쩌지 경계심이 더 컸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 걱정이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끌어온 사업비는 다양한 활동을 풍성하게 기획하는 자양분이 되고, 교사들이 맛있게 만날 여유를 주기도 했으며, 외부 인력을 사들이고, 공간을 쾌적하게 고치는 밑천이 되기도 했지만, 혜택을 받는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을 가르거나 정규 수업시간에 다른 산업 프로그램이 특혜처럼 운영되어서 불협화음이 나기도 했다.
역대 교장들은 교육과정의 중심을 잡기 위해 과감하게 사업 규모를 줄여야 한다고 푸념하듯 말하기도 했지만, ‘아이들을 위해서’ 손에 쥔 적이 있던 돈을 놓기는 참 힘든 모양이었다.
그러던 중 특성화고에 ‘업무관리수당’이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문제가 심하게 불거진 사업, 학생, 학부모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사업’이라고 학교가 공식 고백하고 철회했던 특정 사업을 교장이 재개했는데, 기안에 열람 제한을 걸었다. 더욱 문제의식이 생겼다.
보통 교사들은 사업비에서 식사비는 얼마를 초과하면 안 된다는 규정에도 조심스럽다. 하기에 사업비를 수당으로 받는다는 상상은 꿈에도 하기 힘들다. 학교 하나를 씹어 먹을 정도로 영혼을 갉아먹는 학부모를 만나도 담임수당은 그저 월20만원이며, 야근하면 초과수당, 부장하면 부장 수당을 받을 뿐이다.
당시 학교는 여러 사업으로 월 250만원의 업무관리수당이 지출되고 있었다. 1년 3000만원. 교장은 보통 약 25만원에 학급수를 감안해 업무추진비를 받는데, 교장이 받는 업무관리수당은 이의 1.5배 수준이었다. 공식 수당과 별개로 매월 담임수당의 3.5배를 받는 이도 있었다. 1년에 교원 성과급을 세 번 받는 셈이다.
이런 수당은 특성화고가 교육과 산업의 교집합 위에 있어서 생겨난 것이 아닐까 싶다. 산업의 영역에서 이익집단이 사업을 많이 따낸 직원에게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학교는 가치집단이고, 공평한 급여체계의 적용을 받는 공공기관이다.
물론, 이런 돈을 쥐려고 학교에 무용하고, 학생에 불익한 사업을 벌이는 교육자는 드물겠지만, 학교 사업에 업무관리수당이 존재한다는 그 자체가 학교 교육에 질곡이 되지 않을까 한다. 광장 바깥의 힘이 작동할 위험이 생기고, 성과급보다 더 심하게 급여체계를 흔들며, 수업보다 사업을 중시하는 회사원으로 교사 정체성이 왜곡될 가능성도 있다. 순전히 교육적 목적으로 사업을 하더라도 사익을 위해 사업한다는 의심이나 비난을 받을 수도 있어서 그 누구에게도 좋은 돈이 아니다. 이런 돈을 더 가치 있는 일에 쓰도록 상상하는 공론장이 절실하다.
시민단체 활동을 하다 보면 종종 이런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특히 국가보조금이 투입되는 공익사업에서 절차적 문제를 발견했을 때는 더욱 그렇다. 사업이 학생들을 위한 것이라면 더더욱 고민이 깊어진다. 문제를 제기했다가 사업 자체에 차질이 생기거나, 향후 유사 사업에서 페널티를 받아, 교육의 질을 떨어트리지 않을지 걱정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몇 해 전 광주에 있었던 '매입형 유치원 사업 비위'가 대표적인 사례였다.
우리나라는 국·공립 유치원 비율이 낮아 유아교육의 공공성이 취약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지난 문재인 정부는 국정과제로 국·공립 유치원 확대 정책을 추진했고, 그 일환으로 사립유치원을 교육청이 매입해 공립으로 전환하는 매입형 유치원 사업을 시행했다.
시민단체 입장에서 이 정책의 취지에는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사립유치원을 공립으로 전환하면 국·공립 취원율을 높이고 공교육 기반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우려도 있었다. 과거 각종 비위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던 일부 사립유치원에 특혜를 제공하는 통로로 악용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2021년 광주시교육청은 매입형 유치원 선정 제외 기준을 완화했다. 이 조치는 일부 유치원이 매입 대상에 포함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특히 A유치원은 당시 교육감 주변 비리 의혹과 맞물리며 사회적 파장이 컸다.
시민단체가 문제를 제기하자 A유치원은 결국 사업 참여를 스스로 철회했다. 하지만 논란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다른 매입형 유치원으로 선정된 B유치원에서 또 다른 문제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B유치원은 사업 신청 과정에서 학부모 동의를 제대로 받지 않았고, 운영위원회 회의록을 위조한 정황까지 확인되었다. 그럼에도 광주시교육청은 사업을 계속 추진하려 했다.
그때부터 고민이 깊어졌다. 이미 교육부의 국가보조금이 투입된 사업이었고, A유치원 철회로 정책 추진에도 일정한 차질이 생긴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B유치원의 절차 문제까지 문제 삼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스스로에게 여러 번 되묻게 되었다.
또 다른 고민도 있었다. 회의록 위조 문제를 제기한 학부모들 가운데 상당수는 교육열이 높은 계층이었다. 시민단체가 그들과 같은 목소리를 내는 것이 적절한지, 혹은 자칫 사업 자체를 무너뜨리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닌지 고민이 뒤따랐다.
그러나 교육청의 묵인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시민단체는 결국 선택을 해야 했다. 매입형 유치원 사업 관련 운영위원회 서명부를 위조한 유치원 관계자들을 사문서 위조 혐의로 고발했다.
결과적으로 B유치원 역시 자진해 선정을 철회했고, 국·공립 유치원 확대 계획은 상당 부분 차질을 빚었다.
하지만 이후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사실들은 단순한 절차 문제가 아니었다. 금품수수와 뇌물공여 등 중대한 비위가 확인되었고, 교육청 압수수색으로까지 이어졌다. 결국 유치원 관계자와 공무원, 기자 등 여러 인물이 형사처벌을 받았다.
그 과정에서 시민단체를 향한 비판도 적지 않았다.
"단순한 절차 문제를 키워 광주교육의 명예를 실추시켰다."
"성실하게 근무해온 공직자의 인생을 한순간 무너뜨렸다."
관련 판결이 나온 지도 2년 가까이 지났지만, 그때의 힘들었던 마음은 여전히 마음 한켠에 남아 있다. 그리고 비슷한 상황은 지금도 반복되고 있다.
최근 광주의 C고등학교가 다른 공공기관 사업에 제출했던 교직원 서명을 고용노동부 공모사업 신청에 재활용해 약 4억 원 규모의 국가보조금 사업에 선정된 사실이 드러났다. 결국 시민단체가 감사를 청구했는데, 그 결과 학교와 관계 교원들이 성실의무 위반으로 경고 처분을 받았다.
해당 사업은 직업계고 학생들의 교육을 지원하고 산업 현장이 요구하는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국가보조금 사업이었다. 그러나 사업 운영 과정에서 특정 학생에게만 교육 혜택이 집중되는 문제가 확인되었고, 사업 신청 과정에서 절차적 문제가 드러나 감사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 문제를 제기하는 과정에서도 쓴 소리를 들었다.
"어차피 학생들에게 쓰일 예산인데 굳이 감사청구까지 가야 하는가."
"시민단체가 너무 원칙만 따진다."
이처럼 시민단체는 '별것 아닌 일을 트집 잡는 존재'로 인식되곤 한다. 더 나아가 학생들에게 돌아갈 예산을 막는 악성 민원단체처럼 비춰지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말에 기대 조용히 넘어가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시민운동은 바로 그런 순간에 멈춰서 다시 질문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시민단체의 역할은 잘못된 관행 앞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데 있다. 행정이 원칙과 절차에 따라 공정하게 이루어지도록 감시하고 비판하는 일이 시민사회가 맡은 몫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융통성이 없다는 평가를 받더라도 말이다.
다만 한 가지는 기억해 주었으면 한다. 국가보조금이 학생들을 위해 정당한 절차와 기준 속에서 사용되기를 바랐다는 것을, 그리고 그러한 사업이 특정 기관이나 개인의 편의가 아니라 공공의 이익을 위해 운영되기를 바랐다는 것을.
- 무책임한 교육행정통합 - 진정성 없는 광주·전남 교육행정통합, 숙의 민주주의는 실종된 상태
최근 광주·전남 교육행정통합을 둘러싸고 간담회와 토론회가 잇따라 열리고 있다. 외형만 놓고 보면 '소통'의 장이 확대된 듯 보이지만, 실상은 숙의의 과정이라기보다 형식만 갖춘 행사에 가깝다.
특히 1월 23일 광주광역시교육청 본청 주관으로 열린 대토론회는 질문자가 사전에 내정된 채 진행되었고, 시민의 다양한 문제 제기와 대안을 담아내기보다는 이미 정해진 결론을 만들어내는 절차에 머물렀다. 공론화를 가장한 이러한 방식은 교육행정통합 논의 전반에 대한 불신만 키우고 있다.
행정통합 공론화의 핵심은 '효율'이나 '속도'가 아니다. 예산과 권한을 누구를 위해, 어떤 원칙 아래 사용할 것인지에 대한 충분한 숙의다. 그러나 현재의 논의 과정에서는 통합 이후 교육자치가 어떻게 보장될 것인지, 교육 불평등을 완화할 실질적 장치는 무엇인지에 대한 답을 찾기 어렵다.
현재 준비 중이라고 언론 보도되는 광주·전남 교육행정통합 특별법안(아래 특별법안) 어디에도 이에 대한 명확한 내용은 보이지 않는다. 공청회와 토론회에서는 원론적 설명만 반복될 뿐, 이미 설정된 시나리오를 점검하는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충분한 정보 제공, 다양한 대안 제시, 시민 의견에 대한 책임 있는 피드백이라는 숙의 민주주의의 기본 요소는 실종된 상태다.
이러한 졸속 추진 방식이 특히 우려되는 이유는, 타지역 특별법을 답습하며 특권교육을 확대하는 통로로 작동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현재 논의 중인 특별법안에는 타지역 특별법에서 제시한 각종 특례 조항이 그대로 반영돼 있는데, 이는 영재학교·특목고·자사고·국제고 등 이른바 특권학교 설립과 관련한 교육부 장관의 권한을 통합교육감이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우리는 이미 경쟁과 다양성이라는 명분 아래 학교 간 서열화가 강화되고, 그 비용이 학생들의 과도한 학습노동과 가정의 사교육비 부담으로 전가돼 온 과정을 경험해 왔다. 통합이 일반학교 중심의 교육체계를 강화하지 못한 채 특정 계층을 위한 특례를 늘리는 방향으로 작동한다면, 그 피해는 되돌릴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광주광역시교육청은 '특권학교 특례 조항 폐지'에 대해 사실상 검토 의사가 없다는 입장을 반복하고 있다. 해당 특례가 전남교육청의 요구라는 설명으로 책임을 돌리지만, 이는 공동으로 추진되는 특별법의 합의 정신과도 어울리지 않을뿐더러, 광주교육청 스스로 책임을 회피하는 태도에 불과하다.
더욱 문제적인 것은 광주시교육청이 내세우는 논리다. 부교육감과 미래교육기획과장은 특례 조항을 유지해야 오히려 특권학교 설립을 통제할 권한이 생긴다고 주장한다. 이른바 '착한' 통합교육감이 권한을 쥐고 이를 막을 수 있다는 논리다. 그러나 그 '착한 교육감'의 등장을 누가 보장하는가.
모든 책임을 선거 결과와 이를 선택한 유권자에게 떠넘기는 이 주장은 무책임하다. 만약 이 논리에 진정성이 있다면, 교육부의 부당한 정책 전반을 제어할 수 있는 권한을 특별법에 명시하려는 시도라도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런 노력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필자는 특권학교 문제에 있어 어느 교육감도 쉽게 신뢰하지 못한다. 과거 진보교육감(장휘국) 시기에도 자사고 재지정 취소 요구는 거셌지만, 교육청은 그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았고 끝내 방어적 태도를 벗어나지 못했다. 시민사회의 강한 압력 속에서 자사고 두 곳이 지정 취소되었지만, 특권교육 반대를 표방하던 진보교육감조차 단호한 행정을 보여주지 못했던 기억은 여전히 남아 있다.
현 광주시교육감(이정선) 또한 다르지 않다. 지난해 광주광역시교육청은 광주외국인학교의 내국인 입학 자격과 비율 제한을 완화하는 연구개발특구법 특례를 활용해, 내국인 누구나 입학할 수 있도록 하는 의원 발의 조례에 원안 동의했다. 이는 전문 연구인력 확보와 학교 선택권이라는 명분 아래, 사실상 연간 2천만 원의 학비를 감당할 수 있는 가정을 위한 '귀족학교'의 영향력을 확대한 조치였다. 이처럼 제도와 권한이 주어질 때, 특례는 언제나 가장 손쉬운 방식으로 특권을 확대해 왔다.
광주시교육청은 특권학교 특례 조항을 살리고 싶은 이유만큼, 공식적으로는 교육행정통합에 동의한다는 입장을 밝히면서도, 비공식적으로는 통합 반대 여론을 조성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간 논란이 되었던 교원 및 교육청 행정직 인사 문제에 대해 특별법을 통해 일정 부분 보장이 이뤄지자, 최근에는 학군제 개편과 지역 간 예산 배분에 따른 학부모들의 불안과 우려를 새로운 반대 논리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이러한 앞뒤가 다른 태도의 배경에는 현 광주시교육감의 낮은 여론조사 지지율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정치적 계산은 결국 시간만 낭비할 뿐이다. 2월 내 특별법이 마련되고 곧바로 6월 교육감을 포함한 지방자치단체장 선거 국면에 들어서면, 특목고·자사고·국제고·영재학교 설립 공약이 다시 쏟아질 가능성은 충분하다. 실제로 현 광주시교육감은 '수능 만점', '실력 광주'를 강조하는 현수막을 광주 전역에 게시하고 있는데, '지역 경쟁력'이라는 포장 아래 선별교육 강화 공약이 재등장하는 것은 전혀 낯선 일이 아니다. 특권학교 특례 조항 삭제 없는 교육행정통합은 미래 세대를 볼모로 한 위험한 실험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진정성 있는 교육행정통합 논의다. 요식행위에 그치는 공청회나 형식적인 토론이 아니라, 충분한 정보 공개를 전제로 한 실질적 숙의 과정이 보장돼야 한다. 통합의 효과와 위험, 대안에 대한 명확한 설명과 함께, 제기된 시민 의견에 대해 책임 있게 답변하고 반영하는 구조가 선행돼야 한다. 나아가 주민투표를 포함해 주권자인 시민이 최종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절차 역시 배제돼서는 안 된다. 이러한 조건을 외면한 채 추진되는 통합은 결국 '행정통합 쇼'에 불과하다.
교육은 행정의 하위 수단이 아니며, 선거 전략의 도구는 더더욱 아니다. 지금과 같은 방식이 지속된다면 우리는 또다시 "나중에 고치면 된다"는 말로 불평등의 씨앗을 제도 속에 심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대가는 언제나 학생과 학부모에게 전가돼 왔다. 교육행정통합이 진정 미래 세대를 위한 선택이 되기 위해서는, 지금 이 순간부터라도 원칙과 책임, 그리고 민주적 절차에 기반한 논의로 전환돼야 한다. 이제라도 그 악순환을 멈춰야 할 때다.
한 청년이 광주광역시의회 본회의 진행 중 분기를 참지 못하고 방청석에서 호통을 치다가 직원들에게 끌려 나간다. 광주외국인학교에 내국인이 자유롭게 입학하도록 수정하는 조례가 상정되어 통과되던 순간이었다.
조례가 본회의 밥상에 오르기까지 광주광역시 교육청은 조례 검토 과정에서 감히 의원님들 뜻을 거스르지 않았다. 다만, 상임위를 통과할 때, 부교육감이 ‘영어 유치원의 폐해가 초·중등으로 번질 수 있다.’는 걱정을 짧게 덧붙인 것이 교육청의 한 조각 의기라면 의기였다.
검은 머리를 대폭 허용하는 수정 조례가 상임위를 통과하자, 시민사회에서 성장한 의원들을 찾아 ‘반대토론이라도 해 달라’ 간청했다. 하지만, 당일 반대토론은 물론 반대하는 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학벌없는사회를위한시민모임 활동가 박고형준의 외침만이 광주의 마지막 양심처럼 잠시 본회의장의 공기를 가르다 허공에 흩어졌을 뿐이다.
외국인학교는 이름 그대로 외국인을 위한 학교다. 교육과정도, 언어도, 설립 취지도 모두 그렇다. 내국인 자녀가 들어가려면 외국 체류 경험이 3년 이상 있거나, 모국어 일반 학교에 적응이 불가할 때여야 한다. 이는 공교육 생태계 안에서 교육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해 마련된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그랬던 외국인학교의 문은 광주에서 이제 활짝 열렸다. 돈과 욕망만 있다면.
문을 연 자들의 언어는 타락했다. 공교육 생태계 안의 다양성을 허물어 다른 공간을 만드는 일을 ‘다양성 확보’라 부른다. 그리고, 접근 기회가 평등하지 않은데, ‘선택권 확대’라 부른다. 높은 학비, 사전 영어 몰입 교육 등을 바닥에 까는 외국인학교의 교육과정은 다수 시민을 교문 앞에서 돌려보낸다. 특권이 선택권으로 표기되었을 뿐이다.
조례수정배경에는 “외국인학교에 외국인 학생이 부족하다”는 호소가 있다. 하지만 외국인학교는 고객들의 다양한 입맛을 위해 존재하는 학교가 아니다. ‘연구개발특구의 육성에 관한 특별법’의 핵심은 ‘교육의 시장화’가 아니라 ‘연구인력 유치를 위한 국가 책임’이다. 애초 외국인학교의 재정 안정은 내국인 입학 완화로 해결할 일이 아니라, 특구 예산과 공공 정책으로 책임져야 할 일이다.
광주광역시의회는 이 질문을 건너뛴 것이다. 공교육 경계를 허물어 돈이 들어오게 하는 방식으로. 그 피는 고스란히 공교육이 흘리게 될 것이다. 늑대는 제도의 얼굴을 쓰고 울타리 안에 들어와 양을 사냥할 테니까. 그런데, 이 장면은 비극의 예고편에 불과하다.
2026년 1월 19일, 광주광역시 동구청에서 행정통합 공청회가 열렸다. 광주교육시민연대는 규탄 회견을 한다. 행정통합 논의가 한창이다. 목적지, 도착시간, 포상금을 못 박고 몰아가니 정신이 없다.
수도권 집중 해소, 지역 균형 발전. 이 가치를 부정할 사람은 없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그 길이다!’고 높은 분들이 정한 후, 내달리는 속도감이 아찔하다. 민주주의는 과정 그 자체를 알맹이로 삼는 제도인데, 주권자들은 불안하고, 혼란스럽다.
특히 행정통합특별법안에서는 교육자치를 행정의 종속변수쯤으로 무시하는 한편, 자율학교, 영재학교, 특목고, 외국인학교, 교육국제화특구 등 공교육 평준화를 훼손할 수 있는 권한을 특별시 교육감에게 주는 특례 조항이 담겨 있다. 국가교육정책의 일관성, 안정성이 무너지면서 지역 교육 경쟁력을 갖춘답시고 앞다퉈 특권교육을 여는 열쇠가 되기 쉽다.
그런데, 이를 지적하면 중앙 정부에서 추진할 때 반대하는 것보다 교육감을 상대로 싸우는 것이 낫단다. 이런 권한을 가져오는 것도 교육자치의 자연스러운 모양새란다.
동구청 공청회에서 나누어준 1장짜리 Q&A 자료에서조차 교육 관련 유일한 언급이 “이제 이런 학교들을 마음대로 만들 수 있다”고 행정통합의 장밋빛을 자랑하고 있는데도 그렇단다. 이미 연구개발특구법 개정 조항만 가지고도 광역의회와 교육청이 외국인학교를 위해 어떤 선택을 합작하는지 보았는데도 그렇단다. 공교육 이름으로 공교육 담장을 넘는 일은 ‘교육자치’가 아니라 ‘교육좌초’다.
이미 검은 머리 외국인 학교가 태어났다. 이제 교육 특례의 상자까지 열리면 공교육의 고혈을 짜는 온갖 악귀들이 정신없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그리하여 교육 특례를 행정통합의 전리품처럼 흔드는 세상에서 악귀들은 아이들의 삶을 더 게걸스럽게 먹어 치울 것이다.
지난해 학벌없는사회를 위한 시민모임은 광주광역시 관내에 소재한 A대안교육기관과 B학원을 수사기관에 고발하였다.
A대안교육기관은 ‘대안교육’이라는 이름 아래 법이 정한 최소한의 기준조차 지키지 않은 채 운영되어 왔다. 관할청의 허가 없이 유아를 모집해 교육과정을 운영하였고, 이념 편향과 차별적 운영을 의심케 하는 구체적인 정황도 확인되었다. 이는 교육기관에 요구되는 교육의 공정성과 중립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행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B학원 역시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형식상 학원으로 등록돼 있었지만, 실제로는 초등학생과 중학생 등 의무교육 대상 학생들을 장기간 등원시키며 사실상 학교처럼 편법으로 운영해 왔다. 이는 초·중등교육법이 규정한 취학 의무를 정면으로 위반한 사례로, 장기결석 등 제도의 허점을 이용해 학생들을 학교 밖에 머물게 한 경우라 할 수 있다.
‘대안’이라는 방패 뒤 위험한 교실
문제가 공론화된 이후 두 기관의 대응 방식은 놀라울 만큼 유사했다. A대안교육기관은 누리집과 유튜브에 게시했던 관련 글과 영상을 급히 삭제했고, B학원은 누리집을 잠정 폐쇄하거나 블로그 게시글을 수정하는 방식으로 사태를 무마하려 했다. 책임 있는 해명이나 성찰보다는 책임을 회피하려는 태도가 두드러졌다.
물론 광주시교육청이 이 문제를 방치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대안교육기관과 학원의 실제 교육과정을 행정이 온전히 파악하는 데에는 제도적인 한계가 존재했다. 자칫 적극적인 행정 개입이 공무원의 직권남용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 역시 현실적인 제약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이러한 한계 속에서 시민사회의 고발과 보도자료 발표가 병행되며 사안은 비로소 사회적 논의의 장으로 올라왔다. 관련 사안이 공론화되자 학벌없는사회 누리집의 특정 글에는 A대안교육기관 관련자들의 댓글이 200여 개 이상 달리며 격렬한 반응이 이어졌고, 교육청을 향한 항의 집회로까지 확산되었다.
B학원 문제 역시 언론사 SNS 등을 통해 빠르게 확산되었으며, 이후 유명 야구선수와 전직 부시장 등 사회지도층 인사의 자녀가 해당 기관에 다녔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논란은 더욱 커졌다.
현재 두 기관은 모두 존폐의 기로에 서 있다. A대안교육기관은 등록취소 청문을 마치고 교육감의 최종 결정을 앞두고 있으며, B학원 역시 청문을 앞둔 상태에서 관할 교육장이 등록말소 여부를 검토해야 할 상황이다.
이 과정에서 광주시교육청은 외부의 압력과 여론에 흔들리지 않고 법과 원칙에 따른 행정 절차를 이어가고 있다. 사회적 지위나 영향력의 크기와 무관하게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려는 이러한 태도는, 행정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신뢰가 무엇인지를 다시 확인하게 한다.
지위고하 막론한 엄정 처벌 예고
이번 사례가 던지는 시사점은 분명하다. 대안교육이든 학원이든, 그 이름에 앞서 교육의 공공성과 법적 책임이 전제되어야 한다. 교육의 자율성은 법 위에 군림할 수 없으며, 편법과 특권을 가리는 방패로 오용되어서도 안 된다.
아직 모든 절차가 마무리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번 과정이 끝까지 행정 원칙 위에서 마무리되고, 이를 계기로 대안교육기관과 학원 운영 전반에 대한 점검과 제도 개선이 뒤따르기를 기대한다. 더 나아가 교육의 자율성과 다양성, 그리고 공공성이 균형을 이루는 전환점이 되기를 바란다.
광주에서 10년 만에 수능 만점자가 나왔다. 광주서석고 3학년 최장우 학생이 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전 영역 만점을 기록했다는 소식이 지난해 12월 초 지역 언론을 통해 보도됐다. 광주는 지난 2016학년도 이후 재학생 만점자가 나오지 않았고, 최 학생은 2000년 이후 여섯 번째 만점자로 기록됐다.
이 같은 성취는 개인과 학교, 가족의 노력에 대한 축하로 충분하다. 그러나 문제는 이것이 공교육 행정의 상징으로 어떻게 변용되는가에 있다. 광주시교육청은 이 성취를 기념하는 의미에서 1월 28일에 '수능 만점자 초청 강연회'를 개최하기로 했다. 필자가 속해 있는 광주의 시민단체 '학벌없는사회를 위한 시민모임'은 이에 대해 강한 우려를 표하며 즉각적인 취소를 촉구했다.
교육청은 신문고 민원에서 제기된 취소 요구에 대해 "성과주의를 추종하는 행사가 아니다"라며, 만점자의 강연이 자신의 학교생활과 다양한 경험을 공유하는 자리라고 답변했다. 그러나 '수능 만점자'를 전면에 내세운 행사 자체가 이미 점수 중심 담론을 강화하는 상징적 행위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실제로 이번 만점자는 유튜브 등 온라인에서도 화제를 모았다. 과거 한 교육계 유튜브 채널에서 수학 문제를 빠르게 푸는 모습이 공개되며 조회수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러한 온라인 반응은 대중이 만점자를 어떻게 소비하는지를 보여준다. 개인의 재능이 뉴스와 영상 콘텐츠로 확산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이를 공교육의 공식 행사로 확대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교육청은 강연이 예산을 쓰지 않고 수당도 지급하지 않는 등 운영상 문제가 없음을 강조했다. 하지만 논점은 예산이 아니라 공교육이 어떤 모델을 공식화하고 확산하려는가에 있다. 성적 중심의 성과를 공교육의 공식 메시지로 만드는 것은, 비록 좋은 의도에서 출발했더라도 경쟁과 서열 중심의 문화를 강화할 위험이 있다.
최근 언론 보도에서도 이번 만점자 배출을 두고 "10년 만의 쾌거"라는 긍정적 표현이 주를 이뤘다. 이는 개인의 성취를 축하하는 데는 적절하지만, 동시에 사회적 맥락을 놓칠 위험도 있다. "만점"이라는 숫자는 평가의 척도일 뿐, 학생 각자의 개성과 과정은 또 다른 가치다. 수능이 인생의 전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마치 최고의 목표인 양 교육청이 나서서 호들갑을 떨면 되겠는가.
공교육의 역할은 최고의 결과만을 기념하는 무대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모든 학생이 존중받고 다양한 성장 경로를 인정받는 환경을 만드는 데 있다. 수능 만점자를 초청해 그의 경험을 듣는 자리는 의미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이 성적 중심 담론의 재생산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교육행정은 신중해야 한다.
우리는 이번 논란을 통해 다시 묻는다. 공교육은 어떤 성공을 승인하고 재생산할 것인가? 그리고 그 승인 과정에서 "모든 학생의 존엄과 다양한 배움을 어떻게 존중할 것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말이다. 이번 사안을 단순한 축하 행사로 넘길 것이 아니라 교육행정의 철학과 방향을 점검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