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김 철 수 (당시 18세)
1973년 3월 전남 보성군 봉산리 노산부락 출생
1989년 3월 보성고등학교 입학
1991년 5월 18일 보성고 운동장에서 '노태우정권 퇴진'을 외치며 분신
1991년 6월 1일 전남대학교 병원에서 운명
광주 망월동 민족민주묘역에 안장
◎ 2001년 국무총리 소속 민주화운동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 에서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

동지의 삶과 죽음

1991년, 5월 일 518 민중항쟁 11주년 기념일이자 강경대 열사의 장례 행렬이 망월동으로 향할 때 보성고 학생회 주최로 열린 5․18 기념행사를 치루던 도중 김철수 동지는 운동장에서 온몸에 불을 붙인 채 '노태우정권 퇴진'을 외치며 행사장으로 달려가 쓰러젓다.

친구들에게 "잘못된 교육을 계속 받을래?"라고 외치며 쓰러져 병원으로 옮기는 도중에 '우리의 소원'을 친구들에게 불러 달라고 했다. 동지는 유서로 보이는 타고 남은 종이에 노태우 정권의 퇴진과 참교육 실천을 위해 기성세대의 깨달음을 촉구 하였다. 운명 3일전 육성유언을 남기고 동지는 결국 분신 2주만인 6월 1일 운명하였다.

,

-학생인권 추모제를 제안하며-

2009년 산 자의 고통과 죽은 자의 슬픔이 교차하는 나날입니다. 특히 노무현 전직 대통령 자살은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주며 다시 한 번 인권과 민주주의를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고, 박종태 열사들의 죽음을 통해서도 앞으로 한국사회가 어떻게 변화되어야 할지 중요한 화두를 던져 주었습니다. 지금도 인간답게 살기위해 투쟁과 희생이 직면한 현실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하나의 인권이 있습니다. 바로 ‘학생인권’입니다.

한국사회의 과도한 입시경쟁교육 시스템 속에서 많은 학생들이 죽어가며 고통받고 있지만, 이제는 언론이나 사회를 막론하고 그 누구도 학생의 죽음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늘 그렇듯이 문제의 본질은 외면한 채 그저 학생 개인의 나약함으로 치부하고 넘어가고만 있습니다. 그러나 지난5~6월 광주에서만 5명의 학생들이 자살을 택하는 현실에서 이것을 단순히 개인의 문제로만 치부한다는 것은 너무나 무책임한 태도이지요.

자살은 단지 개인의 죽음으로만 끝나지 않습니다. 죽어간 학생들의 수는 단지 표면적인 수치에 불과하며 그 이면에는 공부와 입시경쟁으로 병들어가는 학생들의 암울한 삶이 깊게 드리워져 있습니다. 통계적으로도 많은 학생들이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으나 자살충동을 느낀다고 하며 그들 중 일부는 실제 자살을 결심하거나 기도한 경험이 있다고 합니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이 해소되거나 일부 해결될 기미가 보이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악화되고 있다는 사실이지요.

왜 학생은 이토록 심한 정신적 고통에 시달려야 할까요? 왜 자살하는 학생의 비율은 시간이 갈수록 늘어가는 걸까요? 그것은 한국의 교육이 그 근본부터 왜곡되어 있음을 반증합니다. 오로지 대학만을 위한 교육, 입시교육으로 대변되는 한국의 교육현실이 이 땅의 학생들을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뜨리기 때문입니다. 한창 꿈을 키워가야 할 나이부터 과도한 입시경쟁에 휘말려 십대 후반에 극심한 전쟁을 치러야 하고 설령 그 가운데서 살아남았다 하더라도 여전히 상처는 지워지지 않은 채 평생을 열등감과 무기력, 체념과 절망 속에서 살아야 하는 것이 바로 이 땅 학생들의 삶입니다.

그럼에도 모두가 살인적인 입시 경쟁에 달려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소위 일류대학 출신들이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권력과 부가 따르는 자리들은 서울대를 정점으로 한 몇몇 대학 출신들이 독점하여 자기들끼리 밀어주고 끌어주며 패거리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 영향력의 정도에 따라 모든 대학은 제일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수직적으로 서열화 되어있습니다. 좀 더 상위의 패거리 집단에 들어가야 차별받지 않고 살 수 있으니 입시경쟁에 매달릴 수밖에 없습니다. 특정 대학 출신의 권력 독점과 대학서열이 깨지지 않는 한, 사람 죽이는 입시경쟁은 계속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 처절한 경쟁 속에서 앞으로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죽어야 하는 걸까요? 아직도 소위 관료, 정치인, 언론인, 지식인들은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지 잘 모르고 있습니다. 문제가 무엇인지 알고 있는 지금 우리라도 학생들의 죽음에 대해 진실 된 애도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이번 학생인권 추모제를 통해 그들의 삶에 관찰하고 학생인권이 소외받지 않는 권리로 만들어나가길 바랍니다. 더 이상 학생들을 죽음으로 내몰지 않기를 바랍니다.

,

,

 


스톤월 항쟁과 더불어 등장한 성소수자 운동진영에서 등장한 문구들이 새삼 와닿았지.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게이파워!'라는 대사에 '풉'하는 웃음을 감출 수 없었지만, 그만큼 애처롭게 들렸던 대사도 없었던 것 같다. 흑인 인권운동에서의 '검은 것이 아름답다'같은 극단적 문구가 떠오르는 느낌이랄까.

스톤월 축제(1969년 6월 27일 미국의 한 게이바-스톤월 에서 벌어진 항쟁은 성소수자들의 운동의 불씨가 되었다) 행사로 영화를 상영한다기에- 광주의 모 게이바로 향했다. 수많은 게이 무리들을 볼 수 있을거라 기대하진 않았지만, 어우, 뻘쭘한 느낌을 버릴 순 없었다.
상영회도 ‘소수파적인 느낌 이었다’ 랄까. 이럴바에야 게이바같은 비교적 폐쇄적 공간보다는 공개적인 자리에서 사흘연속으로 상영하는게 낫지 않을까 라는 생각조차 들 정도로...

당연해서, 뻔해서, 너무 일상적이라 더 현실적인

게이들이 겪을만한, 뻔 하게 눈에 보이는 상황들이 영화에선 계속되지만  뻔한 이야기 일수록 더더욱 심각해진다. 아웃팅을 걱정해 갈색 종이 봉다리를 뒤집어쓰고 보건실에서 상담받는 소년의 모습이라던가(영화 이춘기 中), 이성애자들만의 전유물처럼 느껴지는 길거리 헌팅을 노래로 콕, 찝어서 얘기해준다거나(영화 소년, 소년을 만나다 中) 하는 장면에서는 웃음을 참기 힘들다. 당신을 게이라는 관점에 집중해서 감정이입하시길-
  
혐오스런 생물체가 투명해진 느낌?

'건전한 이성교제'와 남자에겐 '여친'만이 여자에겐 '남친'만이 존재하는 이 꽃같은 세상에서는 성소수자들이 모두 '투명처리' 되어있다. 성소수자들 스스로 그 '투명함'과 '무존재'함을 깨뜨리려 할 시에는 곧바로 그들은 척결의 대상이 된다 랄까. 호모포비아들과 마초꼰대들에 의해서-지극히 정상적인 사람들에 의해서(?)ㅋㅋ

영화 '스톤월'에서 볼 수 있는 60년대의 모습이 옛날 같지 않게 느껴진다. 이른바 남성적이지 않은 남성을 체포하고, 이른바 여성적이지 않은 여성을 체포하는 사회와 우리의 사회는 얼마나 다른가? '나와 너는 다르다'같은 문구에도 감흥이 느껴지는 슬픔이랄까.

당신은 얼마나 남성적이며, 얼마나 여성적인가.

'너는 남자역할이니 여자역할이니?'(영화 -이춘기中에서 선생이 성소수자 청소년에게 묻는 말)

앞에서 이야기했던 이 땅의 호모포비아&마초 꼰대분들이 안쓰러운 이유가 바로 그런거다. 어떤 성역할에 몸과 마음을 옥죄어 사는 그분들이 안쓰러울 뿐인거지.

우리 모두는 다를 수밖에 없다. 여성적임 혹은 남성적임 따위의 이분법으로 나누기엔 우리의 성향은 무지 다양하다는 대단히 상식적인 이야기를 언제까지 목에 핏대 세우며 해야 하는걸까.

<글쓴이 : 이뮤>

,

미안해. 미안해. 미안하다는 말밖에. 너무 당황스럽고 어이없어 아무 말도 안 나왔어. 나 하나 살기 바빠 너희 외면했어. 미안해 정말 미안해.

너희들이 학교에서 빈번하게 일어났던 일인데. 나는 편하니까 그런 생각 한 번도 안해봤어. 나 혼자 편하게 살기 위해. 그런데 결국 여기까지 와버렸네. 항상 어떻게 된 후에 후회하고 미안하고 정말 뭐라 말해야 할지. 모두가 후배들, 친구들, 선배들이고 나중에 사회 같이 나와서 어른이 돼 사회 이끌어야 하는데. 너무 미안해. 미안해라는 말밖에 할 말이 없어. 우리가 조금만 신경 썼더라면, 외면하지 않고 함께 이겨내야 할 입시경쟁 속에서 서로 신경 써줬더라면.

이제 외면 하지 않을게. 너희 심정을 우리가 느낄 것이고, ‘나’라는 존재보다 ‘나의 기억력’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 우리 무한입시경쟁에 몰아넣고 있는 이 사회. 외면하지 않을게. 너희가 살아가고자 했던 삶까지 우리가 더 고민하고 이젠 더 이상 외면하지 않을게.

경신여자고등학교 유선경

,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움 꽃들도
다 흔드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꽃씨 되어 하늘을 날다가
다시 우리 곁으로 새싹이 되어 돌아오기를 바란느
죄많은 너희들의 선생님이 보낸다

<광주자연과학고 교사 정진규>

,

흐린 하늘에 눈물이 맺히는구나
너의 슬픔이 구천에서도 눈 감지 못하고 구름으로 바람으로
하늘을 맴도는 망자가 되어 살아있는 자에게 책임을 묻고 있구나
생명을 버리며 떠난 너희들의 간절한 목소리가 들리는구나 

“선생님, 엄마, 친구들아
제발 우리 같은 서툰 사람도 같이 어울려 살 수 있는 학교
희망을 배우고 꿈을 이뤄가는 학교를 만들어 주세요“

미처 말하지 못하고 떠난 너희들의 한 마디가 떠오르는구나
“내 곁에서 나를 늘 챙겨주었던 친구야 고마워
괴로울 때 어깨를 다독여 주며 힘껏 안아주었던 선생님 사랑해요
밤이면 눈물로 지새울 우리 엄마, 세상에서 가장 소중했어요. 미안해요“

오늘 나는 꿈에서 보았다. 부활하는 너희들을
죽은 너희들이 살아와 학급에서 아이들과 재잘거리는 모습을
폭력과 차별에 주눅들지 않고 다시 시작하는 모습을
가난과 성적이 인생의 마지막이 아니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모습을
학교가 교육 희망의 공동체가 되고
배움으로 서로를 살리는 아름다운 나눔을 실천하는 너희들의 모습을
나는 꿈에서 보았다.

현실이 일제고사, 학교폭력, 따돌림, 성적 차별, 가난, 고통, 주눅
아침 타율자율학습, 야간강제자율학습이 판쳐도
그러나 우리는 안다
그리운 모든 것들이 살아가는 희망이라고
그 희망을 만드는 사회를 너희는 꿈꾸었구나
친구, 부모님, 선생님, 점심 시간, 축제, 나의 꿈, 편지, 선물,
사랑, 존중, 배려, 나눔, 봉사, 추억…. 

그리운 것은 다 하늘로 가져가고
아픔은 다 땅으로 내려놓으렴 아이들아
그 아픔이 거름이 되고 씨앗이 되도록
살아있는 우리가 다시 희망을 심고 싶구나
마지막으로 꼭 들려주고 싶은 시가 있다
이 땅에 살아있는 친구들에게 널리 알려주렴

광주고등학교 교사 박현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