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아프락사스

 「학벌과 불평등」은 두 가지 언제를 언급하는 걸로 시작된다. 첫째, 한국사회에서 학벌은 사람들 사이의 차이를 사회적 차별과 불평등의 기준으로 만든다는 것. 둘째, 학벌은 학력, 곧 배움의 정도가 아닌 학교, 즉 ‘출신 성분’의 문제라는 것. 요컨대 학벌 문제를 계급문제라기보다는 신분 문제로 봐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셈이다.

그 타당성을 부정하진 않는다. 사실상 한국의 대학 입시는 프랑스의 바칼레로아나 미국의 SAT처럼 일종의 자격증 시험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규모가 커진지 오래다. 한국의 수능은 그 자체로 대학 입시를, 대학 입시를 넘어 인생을 결정짓는 시험으로 취급되곤 한다. 이를 테면 전근대 동양의 과거 시험이 그랬듯이.

김상봉은 학벌이 계급보다는 신분에 가깝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 저자 자신은 계급에 속한다고 여기는 - 직업 문제를 예로 든다.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직업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으므로 신분이 아닌 계급 문제에 불과(?)하지만 학벌은 한번 얻은 이상 쉽게 벗어나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와 같은 사례가 학벌 문제 신분제적 성격을 증명해주지는 않는다. 사회에서 직업 변화가 그렇게 잘 일어난다면 모르되, 어제의 트럭운전사가 갑자기 오늘 의사가 되는 수준의 직업 변화는 실제 노동 시장에서는 거의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극심한 불황에도 불구하고 젊은이들이 중소기업에 진출하지 않는 상황을 보라. 이는 일단 중소기업에 들어가고 나면 대기업으로 한 단계 끌어올리기가 쉽지 않다는 걸 젊은이들이 알기 때문이다. 직업이 곧 현대판 ‘신분’ 임을 알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직업 또한 학벌과 마찬가지로 ‘신분’ 문제로 여겨질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니 학벌차별을 학력차별이나 성별차별, 직업차별 혹은 외모차별과는 구분되는 ‘신분 문제’로 판단할 것인지는 좀 더 많은 논의와 좀 더 많은 논거를 찾아야 한다. 굳이 학벌 문제를 신분 문제로 이야기해야만 그 심각성이 부각되는 건 아닐 터이니, 보다 정확하고 보다 적절한 개념을 찾아내는 게 건전한 학벌 논쟁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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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복수

지난 5월, 광주의 한 여자고등학교에서 ‘치마벗기’라는 웃지 못 할 체벌이 벌어졌고, 광주광역시교육청은 해당교사에 감봉조치라는 중징계를 내렸다. 체벌한 교사에게 내려진 징계수위가 적절했는지에 대한 판단은 우선 뒤로 하고, 이 사건이 사제 간의 에피소드 정도로 여기면 되는지부터 판단해보자.

사건은 이랬다. 평소 체벌을 선호하지 않는다는 해당 교사가 쪽지시험 성적이 낮다는 이유로 ‘꿀밤맞기’와 ‘치마벗기’를 선택을 종용했고 이에 치마벗기를 선택한 것. 그러나 해당학교장과 자칭 해당학생들이라고 주장한 어느 네티즌은 벌 자체가 과한 게 아니었고, 학기 초 학생들과 약속한 규칙이라며 체벌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또한, 감사결과 일부학생들은 재밌었다며 긍정적 평가까지 내리기도 하였다. 그렇다면 몸이 견딜만한 벌이면 체벌을 가해도 괜찮은건가? 규칙으로 정한 벌은 정당한 것일까? 게다가 학생이 낮다는 이유로 신체의 자유를 억압하는 게 교육적인가?

상처받는 건 몸 뿐만이 아니다.

체벌이란 신체나 도구를 이용하여 학생의 신체에 타격을 주는 행위뿐 아니라 신체적 고통을 주기 위한 목적으로 행해지는 모든 행위를 포함한다. 그런데 체벌에 대한 논의를 할 때 빠지는 함정 중 하나가 바로 ‘교육적 효과 VS 인권침해’라는 대결 구도를 상정하고, 끝도 없이 미로 속을 헤매다 결국 ‘아직도’ 논의가 더 필요한 문제라며 흐지부지 끝을 맺는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아내, 노예, 수인 등에 대한 체벌이 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용인되던 시대가 있었다. 다행히 현대에 와서 그런 행위는 폭력 행위로, 법으로도 처벌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학생은 여전히 체벌로부터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집단으로 남아 있다. 학교는 계속해서 ‘학생을 바로잡기 위한 체벌’과 ‘학생을 해치는 체벌’을 구분하며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지만 체벌을 통해 교정 받아야 하는 학생에게는 인간으로 대접받지 못하는 비참함과 폭력일 뿐이다.

체벌금지 법제화 산 넘어 산

체벌을 비롯한 전반적인 학생인권법제화를 위한 노력들은 진행 중이다. 최순영 전 국회의원이 발의한 학생인권법은 어렵사리 국회를 통과했지만 우리이게 남겨진 건 단 한 줄의 조항(초중등교육법 제18조의4’) 뿐이었다. 이에 2008년 11월 권영길 국회의원은 다시 학생인권법 개정안 발의하였고 광주․경남․경기지역 학생인권조례(안) 운동을 제안하고 있지만 당파적 이익을 따지기에 급급한 정치권이 이 안건을 공전시킬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정치권과 교육청의 역할이 국민의 아픔을 알고 변화시키는데 있다면 적극적으로 나서는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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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교육청은 자립형사립고, 외국어고 추진을 즉각 중단하라!

- 평준화의 보루 광주에 자사고·외고의 등장은 지역분열과 갈등의 시작을 의미할 뿐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는 우리 국민들에게 커다란 슬픔과 함께 새로운 과제와 출발을 알려주고 있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가 검찰과 보수언론, 정부의 탐욕의 결과이며 내편이 아니면 그 어떤 주장과 비판도 인정하지 않고 반대하는 그 누구도 용서하지 않는다는 오만과 독선의 결과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명박 집권 462일 동안 교육정책 또한 오만과 독선으로 일관했다, 경기 침체와 소득저하 속에서도 영어와 수학을 중심으로 한 사교육비 증가는 중산층 이하 서민들의 고혈을 짜내고 있으며, 남들처럼 자식을 학원에 보내지 못하는 학부모를 죄인으로 만들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경제 만능교육정책은 오로지 ‘가진자’만을 위한 것이다. 영어몰입교육에서 시작해 국제중학교 설립, 제주영리학교 법인 설립, 외국인학교의 내국인 입학허용, 내국인만으로 운영되는 국제학교 등 모두가 가진자 만을 위한 특권교육정책이다. 이 교육정책의 쟁점이 바로 자율형사립고 설립이다.

자율형사립고 설립은 30년간 유지되어 온 평준화체제를 그거도 없이 허물어뜨리고 귀족학교, 특권학교를 설립함으로써 기득권 세력을 위한 대대손손의 철옹성을 학교서열화 체제를 통해 공고히 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자율형사립고에 대해 이미 국민들은 반대의사를 명확히 하고 있다. 2008 10월 한길 리서치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57.8%가 반대의사를 명확히 하고 있고, 76,5%가 자율형사립고가 설치되면 초등학교에서부터 입시경쟁이 강화될 것이라 답변하고 있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광주시교육청은 자사고·외고설립에 혈안이 되어 온갖 감언이설을 통해 사학재단의 신청을 부추겼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다보니 신청과정은 충분한 의견수렴 절차도 없이 파행적으로 진행되었으며 법정부담금도 납부하지 않은 기본도 안 되는 파렴치한 재단들이 신청을 하는 기가 막힌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도록 조장한 시교육청에 대해 분명히 어떤 식으로든 책임을 물을 것임을 밝혀둔다.

-우리의 요구-

-시교육청은 자사고·외고 추진계획을 즉각 철회하라!

-자사고·외고설립을 희망하는 사립재단은 신청을 즉각 철회하라!

-MB식 경쟁교육 따라하는 세교육청은 각성하라!

2009 6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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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교육을 이룩하라!"
1992년 6월 1일, 전남 보성고등학교 5·18 기념행사를 치루던 도중 스스로 온 몸에 신나를 뿌리고 참교육의 거룩한 뜻을 품고 김철수 열사가 성화가 되어 떠난 지 18년이 지났다. 김철수 열사 서거 18주년을 맞이해 우리는 그의 뜻을 기리며, 그의 고결한 죽음을 추모하는 바이다.

하지만 그의 헌신에도 이 땅의 교육은 여전히 청소년들을 죽음의 벼랑 끝에 매몰고 있어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매일 아침 0교시를 시작으로, 교과서에 얼굴을 파묻는다. 그 상태로 밤 10시까지 꼬박 학교에 갇혀있다. 학교에서 나오자마자 끊임없이 영어단어를 외우며 학원차에 올라탄다. 새벽 1시 쯤 잠들었다가, 다음 날 아침 졸린 눈을 비비며 똑같은 하루가 반복된다. 이게 대부분의 학교를 다니는 청소년들의 하루 일과이고, 수많은 청소년들이 죽음으로 소리없이 외쳐온 진실들이다.

앞으로도 ‘경쟁경쟁경쟁’ 좋아하는 자사고, 고교300프로젝트, 대입자율화, 일제고사 등 어이없는 교육정책들이 회오리친다고 한다. 암울하다. 그러나 이런 현실 속에서 우리는 정의를 추구하며 불의에 맞서는 그의 정신을 이어받아, 이 땅의 입시폐지, 학벌철폐, 대학평준화를 이룩하기 위해 그 뜻을 꺾지 않을 것을 다짐하며, 우리의 뜻을 소리 높여 외칠 것이다. 돈 없이도 배울 수 있는, 경쟁하지 않아도 되는, 더 이상 죽지 않아도 되는, 청소년이 행복할 수 있는, 그런 교육을 위해 우리는 행동할 것이다. 당신들이 바꿔주지 않는다면, 우리가 바꾼다!

2009년 6월 1일
학벌없는사회 광주모임(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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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중항쟁 29주년맞이 “2009 청소년인권선언”

또다시 5월, 그리고 2009년.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군부독재와 싸워 목숨을 바친 518민중항쟁 29주기가 되는 해이다. 지난 29년을 돌아보면 광주를 비롯해서 한국사회의 많은 것들이 변화되었다는 걸 실감한다. 국가와 자본에 탄압받지 않기 위해 노동조합과 시민단체들이 생겨나기 시작하였고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국가인권위원회가 설립되기도 하며 작년의 2008인권선언을 봐도 알 수 있듯이 수많은 사람들의 가치와 인권들이 주장되고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의 수많은 ‘인권선언’들은 구호와 형태에서만 그치고 있을 뿐 인권의 모든 것들을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특히 청소년의 삶은 여전히 팍팍하고 그들의 인권현실은 나아지기는커녕 더 힘들어질 것만 같다. 경쟁을 좋아하는 대통령과 교육감 덕분에 줄서기를 위한 공부도 더 빡세게 해야 하고,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임금을 받고 일하는 청소년 노동자들도 여전히 존재하며, 학교에서 두발자유를 주장하는 시위를 했다가 퇴학 압박을 받는 등 일일이 다 쓰자면 종이가 모자랄 지경이다. 그래서 우리는 한국사회 현실에서 청소년들이 가장 절박하게 요구되는 인권의 사항들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그 의견을 기반으로 이 자리에서 2009 청소년인권선언을 발표한다.

물론, 이번 선언을 통해 세상이 단번에 바뀌는 것은 아니겠지만 많은 사람들과 고민을 나누는 과정 하나하나가 인권이 꽃피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한걸음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는 이 선언이 말로만 그치지 않기 위해서 많은 청소년들이 선언문을 공감하고, 현실에 반영이 되도록 선언을 알려나가는 투쟁을 이어나갈 것이다.

청소년은 건강하게 살 권리가 있어. 충분한 휴식과 여유, 그리고 적절하고 차별 없이 받을 수 있는 의료 서비스 등은 중요해.
- 의료서비스 과정에서 청소년이거나 경제적인 약자라는 이유로 제대로 설명 받지 못하거나 치료받지 못하면 안 돼!
- 학교에서 체력검사나 신체검사할 때도 그렇고 의료상의 정보를 청소년의 동의 없이 알려서는 안 돼!
- 생리적 현상에 대해서 누구에게나 상의할 수 있고 보장받아야 돼. 특히, 여성의 생리기간은 안식일이 필요해.

청소년은 먹고 싶은 것을 잘 먹을 수 있어야 해.
- 취향과 사상, 종교 등의 이유로 음식을 거부하거나 선택할 수 있어. 특히 채식주의자들을 위한 배려가 필요해.
- 담배나 주류 등 기호식품에 대한 청소년들의 접근금지를 해서는 안 돼. 이것들이 정말 유해하다고 생각하면 국민 모두를 대상으로 제재하거나 불필요하다는 것에 홍보가 필요해.
- 청소년이라고 해서 억지로 음식을 강요해서는 안 돼. 자신의 몸은 자신이 챙겨야 할 몫이지, 남이 강요해서 건강해지는 문제가 아니야. 

청소년에게는 놀 권리가 있어. 또 여러 가지 다양한 문화들을 통해 즐길 권리도 있지.
- 미성년자 금지라는 이유로 청소년의 문화적 접근을 못하게 하는 건 부당해. 우리도 문화적 해택을 누릴 수 있고 평가할 수 있어.
- 자신의 취미를 즐길 뿐만 아니라, 그에 필요한 돈이나 문화를 만들어낼 권리를 보장받고 그런 다양한 문화 또한 차별받아서는 안돼. 그리고 사회는 청소년들이 놀만한 공간이라던가 그에 필요한 환경을 지원해야해. 

청소년은 쉬고 싶을 때 충분히 쉴 수 있어야 해.
- 방학, 휴가, 공휴일에 쉬어야 할 의무가 있고 생리가 있을 때나 아플 때 쉴 수 있어야 해. 특히 학교에서 청소년들이 쉴 수 있는 휴식공간을 마련해야 해.
- 배설할 수 있는 권리가 있어. 정말 급한데 못 가게해서 아프면 나중에 책임질 거야?
- 잠 좀 자자. 밥 좀 먹자. 우리도 건강과 활력을 챙길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필요해.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을 피곤하게 만드는 빡센 입시경쟁교육과 환경들을 없애야해.

청소년에게는 인간답고 민주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어야 해.
- 교육을 받고 싶어도 가난해서 혜택을 못 받는 경우가 많아. 돈 없이도 걱정 없이 공부할 수 있게 원하는 교육을 공짜로 받게 해줘.
- 우리는 더 이상 성적으로 경쟁하지 않을 거야. 우릴 시험성적으로 판단하고 차별하지 마.
- 야간‘자율’학습이라면서 강제로 실시하는 건 뭥미? 청소년은 자신이 원하는 교육의 내용과 방식을 스스로 만들고 선택할 수 있어야 해. 교과서건 뭐건 다 내용을 정해서 그대로 따르라고 하지 말란 말야.
- 우리는 참고서나 강제로 푸는 기계가 아니야. 교육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있어.
- 함께 배워가는 교육이 되었으면 좋겠어. 교사가 일방적으로 알려주는 것은 훈계이지, 교육이 아니야. 분명 교사도 우리에게 배울 점이 있다구.
- 선후배 관계, 나이, 직위, 소수자 등 약자라는 이유만으로 권위적인 의사소통, 차별, 아웃팅, 폭력 등 일어나지 않도록 인권교육은 정기적으로 필요해.
- 미성숙하다는 이유로 청소년들의 발언권을 묵살시켜서는 안 돼. 판단을 통해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 할 수 있도록 보장해줘야 돼.
- 교육은 일방통행이 아니라 쌍방통행이고 소통이야. 민주적인 방식으로 교육을 해야 해. 청소년에게는 교사를 비판할 수 있는 권리가 있어. 훈계는 너만 하냐! 너나 잘하든지!
- 청소년은 역사적 진실을 알고 탐색하고, 사회의 현실, 과학적 지식, 사는 데 필요한 여러 기술들 등을 비롯해서 중요한 학문들과 자기가 알고 싶은 것들을 원하는 만큼 많이 배울 권리가 있어. 외국어 교육은 영어 같은 한 언어만 신봉하고 빡센 스트레스를 주는 방식이 아니라 필요하고 또 하고 싶은 외국어를 즐겁게 배울 수 있어야 해.
- 교육 환경은 충분히 좋아야 하고, 교육 재정이나 예산도 충분해야 해. 예를 들어, 수십 명씩 오밀조밀 부대껴야 하는 교실이라거나, 찌는 여름이나 꽁꽁 어는 겨울에 에어컨, 히터 등을 교무실에만 빵빵하게 틀고 학생들은 손도 못 대게 하는 건 대체 뭐니?

청소년들은 자신이 원하는 사상을 생각하고 주장할 자유와 종교의 자유가 있어.
- 미션스쿨에 다니는 청소년이라고 해서 강제로 종교의례에 동원하거나 헌금을 내라고 하지도 말고, 종교를 가지고 차별하지도 마!
- 국가에 대한 충성을 강요하지 마. 국기에 대한 경례와 맹세는 사라져야 해.
- 국가, 기업, 기성세대들의 권력으로 특정 사상을 주입하거나, 특정사상에 대해 탄압, 처벌해서는 안 돼. 

청소년은 자신만의 공간과 영역을 가질 수 있고 자신에게 관련된 정보를 스스로 통제하거나 관리할 수 있어.
- 검사할 거면 압수수색 영장을 들고 오라구. 부모나 교사, 경찰이란 이유로 소지품 검사를 하거나 우리의 기록을 엿보는 건 인권침해야.
- 바꿀 수도 없는 주민등록번호로 우리에게 번호를 매겨서 관리하고, 지문을 다 찍어야 하는 주민등록증을 강요해선 안 돼.
- 감시카메라로 청소년들을 감시하고, 휴대폰으로 위치추적을 하는 등의 스토커 짓은 우리의 안전을 핑계로 우릴 통제하는 거야!
- NEIS를 비롯한 성적 등등 개인 정보에 대한 공개는 인권침해야. 성적표도 청소년들의 동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집에 보내거나 하지 말라구. 

청소년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알고 싶은 것들을 알고 살 수 있어.
- 인터넷이나 거리에서나 학교에서나 어디에서나 자신의 의견을 알리기 위해 언론, 전단지, 영상 등등을 만들고 배포할 권리가 있어. 이런 것들을 검열하거나, 허가(?)받지 않았단 이유로 훼손하거나 탄압해선 안 돼.
- 자신들의 의견을 알리기 위해 집회나 시위를 할 권리가 있어. 학교에서나 거리에서나 청소년들은 허가를 받지 않고도 집회를 할 수 있고, 집회를 했단 이유로 불이익을 당하지 않아야 해.
- 청소년이라는 이유로 원하는 정보를 못 접하거나 미디어를 쓰지 못하게 해선 안 돼. 청소년들에게는 정보를 얻기 위해 필요한 여러 가지 매체들이 충분히 지원되어야 해.  

청소년은 가고 싶은 곳을 마음대로 갈 수 있어야 해.
- 집에서 통금시간을 정해놓거나, 학교에서 밖에 나갈 때 외출증을 끊어야 한다거나 해서 우리의 자유로운 이동을 가로막아선 안 돼.
- 청소년의 신체적 조건이나 경제적 조건이나 국적 등 때문에 교통수단 이용을 비롯한 이동에 제약이 있어선 안 되고, 필요한 지원이나 제도, 시설 등을 사회가 책임져야 해. 

청소년이 동네북이냐? 청소년은 위협적인 폭력이 없는 환경에서 살 권리가 있어.
- 때리지 좀 마! 교사나 부모(보호자)나 다른 어른이나 또래나, 누구든 우리에게 매질, 발길질, 주먹질, 기합, 모욕 등의 폭력을 행하지 말아야 해. 어떤 잘못을 했더라도 어떤 이유라도 그게 폭력이나 괴롭힘을 당할 이유는 될 수 없어. ‘사랑의 매’는 거짓말이야.
- 청소년은 학도호국단 등으로 동원되어 전쟁에 참여하지 않을 권리가 있어. 무엇보다도 청소년들은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세상에서 살 권리가 있어.
- 청소년들에게는 당연히 살 권리가 있어. 입시경쟁이나 안전사고나 폭력이나 빈곤함 등을 비롯해서 청소년을 죽음으로 내모는 모든 직․간접적인 폭력들은 사라져야 해. 

청소년에게는 자기 머리카락이나 복장 등을 마음대로 하고 꾸밀 권리가 있어.
- 학교에 다니는 청소년이라고 해서 모두 교복을 입고 이름표를 달게 하지 마! 사복을 입을 자유도 있다구!
- ‘학생다움’ 또는 ‘청소년다움’은 누가 정하냐? 염색, 파마, 삭발, 레게, 고데기, 생머리 등등 청소년은 자기의 머리카락을 마음대로 꾸밀 수 있어. 

청소년의 사랑과 성적 행위, 성적 자기결정권을 막거나 짓밟지 마!
- 청소년에게는 나이와 성적 지향(동성애, 이성애 기타 등등), 성정체성에 상관없이 짝사랑하고 연애하고 성적인 생각과 행동들을 하거나 하지 않을 권리가 있어.
- 청소년은 성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알 권리가 있어. 성은 청소년이 알아서는 안 될 비밀스런 분야가 아니야.
- 청소년은 성매매나 성폭력, 성적 착취를 당하면 안 돼. 또 성매매 같은 걸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지도 않아야 하지. 그러기 위해 청소년의 주거권이나 경제적 권리 등 다른 인권들도 충분히 보장되어야 해.
- 이성애만이, 또는 여/남 성별이분법이 당연한 것이라고 가르치는 건 무개념이야. 다양한 성적 지향과 정체성을 모두 차별 없이 존중하란 말야!
- 단, 성차별, 폭력을 저지르는 마초스런 행동 등은 인권의 이름으로 용서할 수 없어!

청소년들은 적절한 살 곳을 보장받을 수 있어야 해.
- 청소년들이 사는 곳은, 살만한 넓이와 시설의 좋은 환경이어야 하고, 생태적이면서 건강에 나쁘지 않아야 하고, 가능한 한 청소년들이 살고 싶어 할 만 한 곳이어야 해.
- 쫓겨나서 살 곳이 없을까봐 다른 사람들(부모 등등)의 일방적인 명령을 들어야 하거나 인권침해 등을 당하거나 눈치를 보지 않아야 해.
- 가출은 청소년들의 주거권을 보장하지 않는 세상에서 살 만한 곳에서 살고 싶다는 적극적 표현 방식일 수 있어. 청소년들이 원하는 독립적 주거를 사회적으로 보장해야 해. 쉼터나 그룹홈처럼 지금 있는 가출 청소년들을 위한 대안적인 주거들도 더 안정적이고 좋은 환경이 되어야 하고, 청소년들의 인권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어야 해. 

청소년은 노동을 하거나 하지 않을 권리가 있어. 일하는 목적이 생계를 위한 것이건 다른 용도를 위한 것이건 상관없이 청소년들의 노동은 존중받아야 해.
- 청소년 노동자라는 이유로 무시하고 차별하는 것은 부당해!
- 노동을 하는 청소년에게는 안전하고 좋은 노동환경에서 적절한 임금과 복지 혜택을 받을 권리가 있고, 착취를 당하지 않아야 해.
- 청소년에게는 노동 조건을 바꾸기 위해 행동할 권리가 있고, 이런 행동 때문에 불이익을 당해선 안 돼.
- 청소년을 강제로 동원해서 노동시킬 수 없어. 예를 들면, 봉사시간을 채워오게 하거나 다른 강압적인 방법으로 봉사활동이나 참여하고 싶지 않은 행사에 강제로 참석시켜서는 안 돼. 

청소년은 생활하는 데 필요한 여러 가지 것들을 사회로부터 보장받을 권리가 있어. 돈을 쓸 때도 다른 사람을 대리인으로 하지 않고 스스로 쓸 수 있어.
- 돈이 없어서 밥을 못 사먹거나, 교통비가 없어서 가고 싶은 곳을 못 가게 되거나, 난방비가 없어서 추위에 떠는 일 등이 생기지 않도록 충분한 사회적 보장이 있어야 해.
- 먹고 살기에 필요한 적절한 돈을 벌 기회가 박탈당하지 않아야 해. 어리다는 이유로 돈을 벌지 못하게 하거나, 자신이 번 돈을 남에게(부모 등등) 맡기지 않을 수 있어야 해. 그리고 이런 것들을 사회에서 보장을 해주어야 하는 거라구! 

청소년들은 자신과 관련된 문제를 결정할 때 민주적으로 참여할 수 있어야 해.
- 교사, 교장, 교육감, 지방자치단체, 국회의원, 대통령 등 청소년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인간들을 선택할 수도 탄핵할 수도 있어야 해.
- 청소년들 자신과 관련된 일에 대해 다양한 방법으로 의견을 반영하고 직접적으로 결정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해. 시늉만 하지 말고 우리의 의견을 실제로 충분히 반영하시오!
- 교칙이나 집안에서의 규칙 등을 정할 때 청소년 당사자들의 의견이 실질적으로 반영되어야 해. 그렇지 않은 것들은 다 없애!
- 청소년에게는 성탄절 씰이나 수능 떡값 등의 성금을 강제로 내지 않을 권리가 있어.

청소년에게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어. 우리를 위한다는 핑계로 니들 맘대로 하지 말고 우리의 의견을 좀 존중해!
- 나의 삶의 주인은 나야. 주변 사람들이 우리에게 조언을 하거나 도움을 줄 수도 있지만, 직업이나 가치관을 비롯해서 우리의 삶을 우리가 어떻게 살지 결정할 권리는 우리에게 있고, 우리는 다양한 삶의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어.
- 청소년을 보호한다는 거짓된 핑계로 금지하는 모든 것을 금지해! 찜질방, 게임방, 노래방 등에 10시 이후에 출입을 금지하거나, 청소년통행금지 거리를 지정하거나, 온라인게임 셧다운제를 도입하려는 것은 청소년 보호가 아니라 청소년의 행동에 대한 통제라구!
- 만일 이 사회에 위험하거나 유해한 것들이 있다면 청소년에게만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위험한 세상 그 자체를 바꾸기 위해 노력해야 해.

청소년은 청소년들의 인권이 보장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싸우고 행동할 권리가 있어.
- 인권 보장을 요구하며 의견을 표현하거나 시위나 집회나 점거를 하거나 수업거부나 시험거부나 등교거부나 가출 등등의 파업 행동을 하는 것은 모두 우리의 권리야.
- 처벌이나 불이익에 대한 두려움 없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저항할 수 있어야 하고, 인권침해 현장에서 당장 멈추라고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해. “예의”나 “학생의 본분”, “자식의 본분” 같은 말로 우리의 정당한 인권을 위한 행동을 공격하거나 하면 못 써.

청소년은 다른 모든 사람들과 같이 인간으로서 사람답게 살 권리가 있어. 청소년이라고 해서 누리지 말아야 할 인권 따윈 없다구!
- “미성년자”라는 말은 청소년들을 무시하고 차별하는 말이야. “미성년자”라는 말을 사전에서 지워버리자!
- 나이가 적다거나 학생이라는 등의 이유로 차별하거나 함부로 대하지 말라우~
- 처음 만나서 나이 좀 많다고 곧장 반말하거나 막 대하는 건 정말 뷁이야.
- 청소년이라고 해서 모두가 학교에 다니는 건 아냐. 탈학교 청소년이라고 해서 문제아라고 낙인찍는 당신이 바로 문제라오. 또한 청소년들은 학교에 다니는지 여부를 비롯해서 다른 여러 가지 이유들로 차별받지 않아야 해. 

청소년은 가고 싶은 곳을 마음대로 갈 수 있어야 해.
- 집에서 통금시간을 정해놓거나, 학교에서 밖에 나갈 때 외출증을 끊어야 한다거나 해서 우리의 자유로운 이동을 가로막아선 안 돼.
- 청소년의 신체적 조건이나 경제적 조건이나 국적 등 때문에 교통수단 이용을 비롯한 이동에 제약이 있어선 안 되고, 필요한 지원이나 제도, 시설 등을 사회가 책임져야 해. 

청소년은 행복하게 살 수 있어야 해.
- 청소년들은 충분히 실수하고 경험을 쌓아갈 권리가 있어. 청소년들에게는 꿈을 꾸고 추구할 권리가 있어.
- 청소년들의 좀 더 행복한 삶을 위해서 필요한 여러 가지 것들을 이 사회가 가능한 한 제공해야 해.
- 청소년의 행복은 미래의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의 것이어야 해. 청소년은 지금을 사는 인간이고, 미래로 삶이나 행복을 유예한 인간이 아냐.

2009. 5. 24

2009 518 청소년인권선언자 일동

강형찬 위성은 최진욱 윤도성 조아라 박민주 김다영 한수진 설지환 고대한 천영경 원내강 임기빌 조진량 임준영 강혜수 오종현 신서혜 이민주 곽민주 진아라 이영인 박설희 황다솔 박수진 임형덕 최숙인 박윤아 양수진 강민창 김서빈 김인지 박선용 박다진 정동환 김가영 조정은 정유리나 강지연 유수정 김은유 신다정 용지영 김민정 김신영 최설아 최호준 송새롬 오승현 임여은 김한나 임가희 안상민 이한솔 이원정 이미송 오미령 허정연 이유라 김수현 최은비 박흐선 김규태 나종성 이창윤 김정혁 이하연 한찬란 박동민 박예현 황주언 류미송 강선주 채지원 박다솜 박준서 박미리 조은영 문길상 이진범 김영산 김경민 최병국 주진주 김유리 이유지 주정애 이도영 배종열 최혜진 최근실 황은지 김태란 김은아 서민정 김세영 고경태 이상진 이해윤 윤서인 김경주 최솔휘 오신우 정동수 이다솔 박주현 김범원 김준형 김민지 이건우 박한솔 고예선 김승현 정일형 이령근 박현식 이다경 이현진 박지은 김미리 최다인 공현도 김형태 한지은 곽영서 심승아 장연수 박은성 조미나 박은빈 박신영 강현희 김한빛 유다혜 백준석 김하늘 전가현 문민제 신주성 김혜원 소아라 이동훈 장준영 오민희 이정혜 하수빈 윤수진 정선화 김유진 고상은 고연지 이미진 정윤모 박예림 서주희 송예림 최지원 고미소 이다솔 최희진 전혜빈 정영석 김대희 송도영 이소민 최홍준 최지현 심연수 김현재 장인우 서유리 김이꽃 김혁진 최수지 조현지 이승호 진정진 최진화 최진현 송시호 기진주 김재완 이ㅠ림 채아름 송유민 남슬기 선희빈 임형준 양윤화 서소연 정소영 최세현 나혜진 김혜선 오윤한 김보하 이은미 고민재 정찬영 한동혁 고영재 김우성 장병준 박정주 문효선 유나영 김나영 김혜찬 김주연 구가연 이시영 김슬 박나리 곽지현 김영운 정지혜 정화영 제갈진 홍세훈 조혜연 박은기 홍연희 이영빈 윤정선 윤재호 김수정 하주형 김나영 서동희 이영은 정해천 양지연 박고형준 김영서 문성빈 나슬기 이한솔 김화란 이해원 김은비 차진주 신경례 정채연 김한빈 고은석 조우영 한유경 강아 김도희 김다솜 김하은 박진 전은엽 전우리 양민경 김인선 김동욱 김용태 윤혜빈 박한별 소아영 정송현 기혜숙 김지연 오진옥 서은혜 노지현 김헤정 오다연 윤영채 조은영 김지혜 정대욱 조송이 박시은 서민주 김형신 방채현 나소은 임지수 정병호 조우영 백승례 홍지웅 심지인 이아영 김지현 차왕현 장용대 서지은 위하리 김의연 김민지 조우영 김명화 박세리 김원비 배솔리 손윤주 홍한솔 서주혜 이진 강연희 박하영 김영빈 정소영 허루시 장윤진 박소운 손예지 이승호 전정진 최정화 최진현 송시호 기진주 김재완 김유림 채아름 송유민 남슬기 선희빈 임형준 양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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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박 정부 교육정책 전면 전환과 대안 마련을 위한 2009 광주전남 교육선언
-      경쟁에서 협동으로 차별에서 지원으로 -

1. 일시 : 2009 5 21 () 오전 10 30 / YMCA 무진관

 

2. 교육선언 취지
우리의 미래인 학생들은 평화와 공존, 협동과 창의성을 익히며 행복하고 건강하게 자라야 합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불도저식 경쟁 지상주의 교육 정책은 우리 학생들과 우리 미래를 불안하게 하고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 1년의 교육정책이 이대로 추진된다면, 공교육은 파괴되고, 사교육은 더 기세를 높일 것이며, 학생들의 인격과 자존감은 무너지고, 우리 사회의 지속적 발전도 곤란한 지경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특히나 광주지역은 학교의 학원화 현상이 어느 지역보다 심각하여 최근 학생체벌, 자살사건 등이 발생한 것은 그 필연적 결과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에 ‘경쟁에서 협동으로, 차별에서 지원으로’의 교육정책 전환을 요구하고, 새로운 대안을 제기하는 광주•전남 각계각층 인사들의 ‘2009 교육선언’을 발표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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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7일 오후2시, 광주YMCA 2층 울안실에서 청소년인권선언을 준비하는 포럼을 가졌답니다. 많은 청소년들이 참석하지 못해 아쉬움이 남은 행사였습니다. 이 날 나눈 이야기로는

1. 2009 청소년인권선언의 내용 및 구성과 문제의식 (이뮤,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2. 한국의 현실에서 2009 청소년인권선언운동의 의미 (유선경, 「전국청소년학생연합」)
3. 소수자의 권리선언과 2009 청소년인권선언의 가로지르기 (김도연, 「광주장애인차별철폐연대」)

이러했습니다. 이 날 자료집은 파일로 첨부하였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2009 청소년인권선언 캠페인 및 기자회견
5월 23일 오후2시~7시 금남로차없는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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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름, 그 다채로움의 씨앗을 위하여...

광주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 도연

2001년, 장애운동을 하는 이들이 ‘이동권을 보장하라!’라고 외쳤을 때 지나가는 한 아이가 “아저씨 이름이 이동권이에요?”하고 물어본 적이 있었습니다. 두고두고 활동가들 사이에서 회자되곤 하는 이때의 기억은 이동권과 같은 ‘당연한 권리’가 어느 누군가에게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 에피소드입니다.

청소년, 성소수자, 장애인, 이주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 또는 소수자들의 인권을 가로지르는 기호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비장애 남성 내국인 이성애자를 중심으로 구조화 된 사회 속에서 아니 그것들을 포함한 특정한 가치를 기준으로 형성된 사회 속에서 ‘다름’은 곧 부족함이나 부정적인 것으로 인식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는 기존의 질서 내에서 차별받거나 배제되는 이들에게 있어 구조적인 차별과 억압을 인지할 수 있는 최초의 나침반입니다. 하지만 과연 대한민국의 청소년 특히 장애 청소년들은 얼마나 이 ‘?’를 접할 수 있었을까요? 자신의 의사에 반하는 획일적인 선택을 강요당하고 무한 경쟁의 입시중심 교육에 신음하는 장애/비장애 청소년들, 그렇게 다르지만 또 닮은 삶을 살아가는 것이 지금의 청소년들 모습이 아닐까요?

1990년대 학교를 다니던 제게 학교 내에서의 장애차별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제가 다녔던 학교가 장애학생들만을 따로 모아둔 ‘인디언 보호구역’ 같은 특수학교였기 때문입니다. 당시엔 통합교육이나 일반학교 내 특수학급 등이 막 고민되고 만들어지던 때였고 극히 제한적으로 존재했기 때문에 학교에서의 장애차별에 대한 문제가 크게 부각될 수 없는 시기였습니다. ‘장애인 교육권 보장!’을 목표로 2003년부터 전국적으로 시작된 장애인 교육권 투쟁은 장애 청소년들에게 허락된 인디언 보호구역 같은 ‘특수학교’를 벗어나 일반학교 내 특수학급 또는 통합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개별 주체인 장애학생들은 ‘장애인’이란 하나의 묶음으로 사고되었고 여전히 개별적인 목소리는 막혀있습니다.

일제고사에서의 장애학생 배제로 드러난 2009년의 광주시의 교육 현실은 한 명 한 명의 주체들이 어떻게 묶음으로 취급되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일제고사에 대한 동의 여부를 떠나 학교 생활에 있어서의 장애학생에 대한 인식이 어떠한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가 장애학생들에 대한 시험 볼 기획 박탈로 드러난 것 입니다.

이러한 장애학생들의 사례는 무수히 많습니다. 소풍 또는 학교 활동에서의 부모님 동행 강요나 학습에 필요한 최소한의 교재·교구의 미 제공 등, 다름이 차별로 이어지는 일은 매우 일상적인 문제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잠깐 생각해봅시다. 이러한 장애학생들의 문제가 성인 또는 구조화된 학교 시스템만의 문제일까요??

청소년 인권을 고민하고 입시폐지 등을 요구하는 이들 내에서 장애청소년 또는 청소년 성소수자들에 대한 ‘?’는 존재했는가를 생각해봅시다. 흔히 10대들 사이에서 통하는 말들이 있습니다. 세대에 따라 계속 달라지는 그 말들은 사용하는 주체들의 인식을 드러내기도 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애자’란 장애인을 지칭하는 은어는 저를 적잖이 당황하게 만들었습니다. 물론 이성애를 당연한 것으로 간주하고 동성애를 ‘변태’라 지칭하는 것 역시 불편하기는 매일반이었습니다. 청소년 시기를 학교에서 보내야 하는 이들에게 두발규제와 입시경쟁은 가장 중요한 문제들 중 하나일 것 입니다. 그러나 무한경쟁을 강요하는 입시경쟁이 사라지고 획일적인 통제의 상징인 두발규제가 사라진다 하더라도 여전히 남아있는 문제들은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들이 여전히 존재하는 한 청소년 인권운동은 현재 진행형일 수밖에 없으며 그 문제들을 외면하는 순간 청소년 인권 운동은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그 방향을 잃게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나의 문제가 곧 우리의 문제임을 믿기에 무한 경쟁의 입시교육에 다같이 ‘No!’라고 말할 수 있었을 것 입니다. ‘청소년’의 문제가, 도대체 알 수 없는 ‘만19세’란 기준선 아래 ‘미성년자’란 낙인이 찍혀 기성세대의 가치와 욕망을 강요당하며 생겨나는 것임을 인식하며 지금의 ‘청소년 인권운동’을 조직하게 되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좁게는 청소년들의 삶부터 넓게는 청소년기를 지난 모둔 이들의 삶을 위해 ‘?’로부터 시작되는 일상적인 자기 성찰과 다른 이들에 대한 예의는 좀 더 넓고 좀 더 많은 이들과 함께 청소년 인권운동을 만들어갈 수 있는 토대가 되어 줄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세상은 우리가 희망하는 대로 조금씩 변해갈 것 입니다. 왜냐하면 현재의 사회 질서를 만들고 유지하려는 성인들은 그 보다 젊은 세대들에 의해 대체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촛불세대라 명명된 지금의 청소년들이 시간이란 강력한 힘으로 만들어 갈 미래는 장애문제, 성소수자 문제, 이주노동자 문제 등 정치적 소수자들의 문제가 존재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내가 동의할 수 없고 즐겁게 만들어 갈 수 없다면, 미래는 원치 않는 방향과 모습으로 형성되어 갈 것입니다. 모두가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가 생동하는 더 낮고 더 넓은 청소년 인권운동과 그러한 고민이 담긴 선언이 만들어지기를 희망합니다.

‘다름’이 다채로움이 될 수 있도록 고민하고 움직이는 그 길 위에서 섬세해진 감수성과 참을 수 없는 반가움으로 만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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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현실에서 청소년 인권선언의 의미

전국청소년학생연합 의장 유선경

현재 대한민국 중고등학교에서 일어나는 빈번한 일을 보자. 두발규제? 교복규제? 여러 가지 규제가 판치고 있는 학교 내에서 과연 학생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것이 잘못된 거라고는 생각할까? 일반적으로는 ‘아, 내가 잘못했으니까 잡히는 거구나.’ 하고 합리화시킨다. ‘왜 우리가 선생님들이 만든 규칙을 그대로 따라야만 하지?’ 라는 문제점을 제기하는 학생들은 거의 없다. 단지 ‘원래부터’ 그래 왔으니까, ‘다들’ 그러니까. 라는 말도 안되는 그런 소리들로 자신들을 그저 묶어놓고 있다. 학교의 구성원은 분명히 학생이 제일 많은데, 그러면 우리가 직접 생활하는 우리의 터전인 ‘학교’는 우리도 함께 환경을 만들어가야 할 게 아닌가. 그런데 왜 우린 관리를 받아야하는 대상일까? 머리 길이 25cm, 교복 치마 무릎 밑으로 몇 센치 따위는 대체 누가 정해놓은 걸까?

또한 전문계 고교에 다니는 청소년들도 상황이 심각하다. 마치 공부를 못하는 사람이 전문계 고교에 다니는 것으로 생각하고 ‘전문계 다녀요’ 라고 하면 색안경을 끼고 본다. 소위 ‘꼴통들’ 이라고 말하고, 못한다고 무시한다. 자기가 그쪽 공부 하고 싶어서 그쪽에 갈 수도 있고, 여러 가지 다른 요인이 있을 수도 있는 거지 왜 하나로만 볼까?

학교에 다니지 않는 청소년들도 예외는 아니다. 우리 사회는 인식이 이상하게 굳어져 있어서, 학교에 다니지 않는 청소년들, 즉 탈학교 청소년은 굉장히 이상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있다. ‘어머 너는 왜 학교에 나가지 않는 거니?’ 마치 학교에 나가야 하는 게 정상인 것처럼. 학교에 나가지 않는 청소년들 중에는 학교 제도에 부적응한 학생들도 있겠지만 학교에서 자신의 꿈을 이룰 환경이 되지 않는다거나,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왜 반드시 학교에 나가야만 ‘정상적인’ 사람이 된다는 거지? 그런 법칙은 누가 정한 거지?

대한민국에 있는 많은 청소년들은 아직 ‘인권’ 이라는 것에 대해 감을 못 잡고 있다. 그거야 당연히 우리는 배운 게 아니니까. 그렇지만 느끼고 있지 않는가. 두발을 잡는 것에 기분이 나쁘고, 교복 치마 길이를 잡는 거에 기분이 나쁜 게 그 예다. 정말 잘 된 거라면 아무런 느낌 없어야 하지 않을까. ‘인권’은 인간이 가져야 할 기본적인 권리. 즉 우리가 인간다운 대접을 받기 위해 필요한 당연한 것이다. 근데 왜 우린 이걸 모르는 거지? 그거야 우리가 잘 몰라야 내 권리를 찾기 위해 주장할 수가 없으니까. 그럼 우릴 통제할 수가 없으니까.

우린 관리 받아야 할 대상이 아니다. ‘청소년’ 이라는 그 말 그 자체로 우리는 한 명의 인간이고 감정이 있는 ‘사람’ 인데, 누가 누굴 관리하고 누가 누굴 통제한다는 말일까. 중요한 건 다들 모른다는 거다. 아주 당연한 것처럼, 원래부터 그래 왔으니까 그냥 아무런 느낌 없이 그러려니 하고 만다. 나보다 먼저 세상에 나온 분들은 내가 세상을 잘 살게 도와주는 역할을 하면 되는 거고 나는 그들을 보고 난 어떻게 살아야겠다~라고 생각하고 앞으로의 내 인생에 지표가 되면 되는 거지 왜 나보다 먼저 나온 사람이라고 날 맘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지. 상호 협력적인 관계가 되면 되는 거지 왜 우리를 규제하고 우리를 만들어가려고 하는 건지 모르겠다. ‘차이’와 ‘차별’이 틀리듯이 남과 나는 충분히 다를 수 있고 사람이라는 게 다른 존재인데, 어째서 인정하려 하지 않는 거지. 왜 우리를 그쪽 기준에 맞게 만들려고 하는지 정말 모르겠다. 인권? 인권에 대해 가르쳐주지도 않으면서 모르니까 권리가 없다. 라는 걸까. 우리를 규제하기 위한 교칙, 그리고 체벌. 교칙은 학교의 삼주체 중 하나인 우리가 함께 만든 것도 아닌데 무조건 따르라는 것도 이상하고 그 교칙에 따르지 않으면 (혹은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육체적인 벌을 가미한다는 것. 대체 어째서 그래야 하는걸까.

우리는 누구에게 규제받아야 할 대상도, 관리받아야 할 대상도 아니다. ‘청소년’으로서, 권리의 한 주체로서 당당하게 서야 할 ‘사람’들이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물론 청소년들도 잘못하고 있는 게 많다. 나와 남이 다른 걸 인정하고 존중해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상당하다. 근데 우린 아까 말하다시피 ‘어리지’ 않는가. 어리다고 모든 걸 덮어버릴 수는 없지만 그만큼 더 삶의 경험이 없는 우리는, 우리보다 삶의 경험이 많은 그 사람들에게 배워야 하지 않을까. 그 사람들이 우리를 가르쳐줘야 하지 않을까.

이런 상황에서 청소년 인권선언은, 우리가 우리의 권리를 알고 당당하게 우리의 목소리를 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한국의 청소년들은 기본적인 인권을 너무나도 침해받고 있고 심지어는 그 정도도 모른다. 많은 청소년들이 우리가 보장받을 수 있는 권리를 알고, 누리려는 움직임을 보인다면 반드시 된다. 한 명의 목소리도 아니고 많은 청소년들이 함께 목소리를 내준다면, 그리고 우리가 외치면 된다. 이 세상에 못할 일은 없으니까. 또한 이번 광주에서의 청소년 인권선언을 시발점으로 전 대한민국으로 퍼져나가길 바란다. 광주의 청소년들이 안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많은 청소년들이 알고 공유하고 모든 것에 대해 당당하게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을 때까지 해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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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청소년인권선언을 말하며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광주지부 활동가 이뮤

2008인권선언

2008선언은 세계인권선언 60주년을 맞아 세계인권선언의 한계를 인식하고 단순히 인권선언을 다시 읊는 것이 아닌 저용량정부 시대에 절박하게 요구되는 우리사회 각계각층의 요구사항을 새로운 2008인권선언으로 만들어 냈다는 데에 큰 의의가 있습니다. 예전과는 달리 많은 사항들이 인권의 영역으로 드러나게 되고 그것들을 선언으로서 다시 정립해나가는 과정은 서로의 인권의식과 연대의식의 감수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서도 의미가 큽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제안하고, 토론하는 과정을 거치다 보면, 우리 서로의 인권의식도, 연대의식도 높아지겠지요. 그 자리에서 투쟁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제안도 하고, 토론도 하고, 실천 활동에 대한 평가도 하겠지요. 선언을 만들어가는 그 자체가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해가는 과정입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인권선언을 들고 우리는 12월 10일, 청와대로, 국회로, 대법원 등으로 행진합시다. [2008년 인권선언운동]을 제안하며 中

청소년 인권선언의 의미

아직도 청소년은 헌법에 나열되어있는 기본적 권리들을 누릴 수 없는 주체 아닌 주체들입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생기고 수많은 인권선언 내용들을 접하게 되었지만 청소년들만큼은 그런 인권영역에서 권리를 갖고 서있을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청소년들을 대하는 국가적 선언이나 슬로건들-청소년들이야말로 나라를 이끌 주역이며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의 소중한 자원들이다-따위를 바라보노라면 끔찍하기까지 합니다.

지난 2년 동안 수많은 일들을 낳았던 새로운 버젼의 일제고사, 여전히 계속되는 대학입시를 위한 학습노동, 다양한 가치들이 무시될 수밖에 없는 환경들 속에서 얼마나 많은 청소년들이 존재로서의, 주체로서의 가치관을 내세우고 있을까요. 정부의 말마따나 인간이 아닌 학생들은 ‘자원’이기 때문에 인권 따위는 누리지 못하는 것일까요. 매년 죽어가는 수백 명의 청소년들은 지금의 인적자원 생산을 위한 희생자들이라는 것일까요.

청소년인권선언은 그런 점에서 더더욱 의미가 큰 것입니다. 2008청소년인권선언의 뒷담화 에서 이 사회에서 청소년인권이 보장될지의 가능성이 코딱지만큼도 안보이기 때문에 저항권을 무려 제 2조에 넣었다는 말은 더욱 이해가 됩니다. ‘너희들의 몸은 너희의 것이 아니야’라고 외치는 듯한 수많은, 청소년들에 대한 규제, ‘너희들은 미성숙하기 때문에 성숙해질 기회를 가져선 안 돼!’라고 외치며 청소년들의 수많은 당사자적인 권리와 기회를 박탈하며 그 행위들을 합리화하는 것을 보면 어떤 상식이하의 수준과 싸워나가는 기분까지 드는게 현실이니까요. 또한 청소년인권선언은 청소년보호주의를 명분으로 삼아 그것을 청소년의 통제방식으로 사용하는 것 또한 반대합니다.

♪ 쫓겨나서 살 곳이 없을까봐 다른 사람들(부모 등등)의 일방적인 명령을 들어야 하거나 인권침해 등을 당하거나 눈치를 보지 않아야 해.

♪ 가출은 청소년들의 주거권을 보장하지 않는 세상에서 살 만한 곳에서 살고 싶다는 적극적인 표현 방식일 수 있어. 청소년들이 원하는 독립적인 주거를 사회적으로 보장해야 해.

♪ 나의 삶의 주인은 나야. 주변 사람들이 우리에게 조언을 할 수도 있지만, 직업이나 가치관을 비롯해서 우리의 삶을 우리가 어떻게 살지 결정할 권리는 우리에게 있고, 우리는 다양한 삶의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어.

 

♪ 청소년을 보호한다는 거짓된 핑계로 금지하는 모든 것을 금지하라! 찜질방, 게임방, 노래방 등에 10시 이후에 출입을 금지하거나, 청소년통행금지 거리를 지정하거나, 셧 다운제를 도입하려는 것은 청소년 보호가 아니라 청소년의 행동에 대한 통제라구!

♪ 만일 이 사회에 위험하거나 유해한 것들이 있다면 청소년에게만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위험한 세상을 바꾸기 위해 싸워야 해.

-2008 청소년인권선언 중

우리는 저항한다, 고로 존재한다, 고로 청소년인권선언을 시작한다.

우리는 더 이상 당신들의 “조금만 더 참아라.”라는 말을 듣지 않겠다. 차라리 죽어서 무덤에 묻힐 때까지 참으라고 해라. 청소년들은 이제 훈육 받는 객체이기를 거부하고 스스로의 권리는 스스로 쟁취하고 지키는 주체가 될 것이다. 나중 같은 건 필요 없다. 대학 들어가고 나서, 또는 자격증 따고 나서 같은 건 필요 없다. 우리는 바로 지금 여기서 우리의 권리를 선언한다.

- 학생인권선언 2006 청소년 인권포럼 아수나로 -

이 땅의 청소년들은 주체로서 살지 못하는 현실, 끊임없는 주입, 강요 따위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자신의 머리길이조차 선택할 수 없는 현실에 놓여 있는 청소년들에게 있어서 자기의 성향과 존재를 존중하고자 하는 어떤 ‘선언’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선언을 실현시키고 설득해나가는 과정은 물론 함께 이뤄져야 합니다. 그리고 청소년인권선언자체로서의 의미도 충분히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야말로 청소년이 인간으로서 존재하기 위한 선언입니다.

선언은 계속되어야 한다.

이것은 청소년인권선언의 완성은 아니다. 급하게 뚝딱뚝딱 만들어서 빠지고 부족한 부분도 많이 있다. 그리고 아직 많이 알려진 것도 아니다. 앞으로 청소년인권운동의 발달과 함께 성장하고 보완되는 청소년인권선언이길, 그리고 많은 청소년들이 읽고 영감을 얻는 청소년인권선언이길 바란다. 아니, 정확히는 우리가 그런 청소년인권선언을 만들기 위해 앞으로 활동해나갈 일일 테지.

-욕심으로 가득 찬 청소년 인권선언 중-

‘2008’이라는 단어는 곧 이 선언이 끊임없이 수정되고 보완되어야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이겠지요. 그리고 이 선언에 각계각층의 청소년들이 수많은 구체적이고도 다양한 내용의 댓글을 달 필요성을 느끼게 된 것이 이 포럼의 시작입니다. 자 우리는 모두 똑같은 사람을 원하지 않습니다. 이제 우리의 다름을 인정하고 공감할수 있는 선언을 시작합시다.

당신은 당신의 존재를 선언할 준비가 되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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