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벌 없는 사회를 위한 광주시민모임의 면담요청에 대한 지혜학교의 입장
1. 지혜학교에서는 지는 3월 1일 새 학기가 시작하면서 <졸업생 진학현황 안내(최종)>이라는 글을 올렸습니다. 관련된 글은 다음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http://www.sophiaschool.or.kr/default.asp?board_mode=view&menu_no=144&bno=255&issearch=&keyword=&keyfield=&page=2
2. ‘학벌없는사회를 위한 광주시민모임’에서 보낸 요청서에는 이 글을 올린 이유를 “폭 넓은 독서를 통한 인문적 소양을 기르고, 철학적 비판의식을 성장시키는 것이 오히려 대학입시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라고 하면서 이 내용을 핵심적으로 ‘강조’했다고 했습니다. 원문을 보면 과연 이 부분은 굵은 글씨로 되어 있기에 그런 오해가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3. 그러나 이 글의 핵심은 굵은 글씨로 표현된 그 내용만이 아닙니다. 좀 길지만 그대로 인용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지혜학교 교육의 실험을 통해 일반 제도학교의 교육에 의미 있는 제언을 몇 가지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중 한 가지는 3년 혹은 6년 간 입시교육에만 몰입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폭 넓은 독서를 통한 인문적 소양을 기르고, 철학적 비판의식을 성장시키는 것이 오히려 대학입시에 도움이 된다는 점입니다. 이는 우리나라 중고등학교의 교육의 방법과 내용이 크게 바뀌어‘정상적인’ 교육을 해도 좋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이 내용이 모두 동일한 굵고 큰 글씨로 되어 있습니다.
4. 위 인용 글에서 볼 수 있듯이 강조점은 철학과 인문학을 공부하는 것이 대학입시에 도움이 되며, 따라서 그렇게 공부한 지혜학교의 대학진학 성과를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중고등학교의 교육의 방법과 내용이 크게 바뀌어‘정상적인’ 교육을 해도 좋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라는데 있습니다.
5. 그리고 위의 게시글은 다른 대안학교들과는 달리 지혜학교에서는 지식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하면서 “철학-인문학을 중심으로 한쪽에는 지식교육이, 또 다른 한쪽에는 지혜와 생태교육이 마치 솥의 세 발처럼 정립하는 교육을 추구”한다고 하는 지혜학교의 교육철학에 대한 설명이 이루어지는 맥락에서 나온 글이라는 점입니다.
6. 다시 말하면 지식교육을 중요한 교육의 한 축으로 설정했는데, 지식교육만을 강조하면서 입시에 몰입하는 일반제도교육의 기준에 따른 성과보다도 훨씬 더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들어냈기에, 일반 제도학교도 입시에만 몰입할 것이 아니라 교육을 ‘정상화’시키는 것이 그 기준에서조차도 더 유리할 수 있다는 하나의 ‘제언’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소위 일류대의 진학률을 논한 것이 아니라 중학교 졸업성적과 고등학교 입학성적, 그리고 졸업성적을 길게 설명한 것이지요.
7. 게시글에서 진학결과를 설명함에 있어서도 소위 ‘특정대학’을 지칭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모든 졸업생의 진학결과를 모두 적었을 뿐이지요. 재수와 삼수를 하는 것 까지 포함해서요. 요청서에서 얘기하는 ‘특정대학’운운은 소위 일류대 입학을 중심으로 일반 고등학교와 학원에서 펼침막을 내거는 것을 지칭한다고 여겨지는데, 이것과는 완전히 다른 경우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8. 만약 지혜학교의 1기와 2기 중에 어느 누구라도 대학을 진학하지 않는 선택을 했다고 하더라도 지혜학교에서는 그것을 적극적으로 환영하고 마찬가지로 위와 같이 알렸을 것입니다. 이 내용 역시 게시글에 적시되어 있습니다. 다만, 이때는 제목이 <진학현황>이 아니라 <진로현황>이 되겠지요. 제목이 진학현황이 된 것은 학생 모두가 대학으로의 진학을 희망했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6학년(고3)의 경우 1명의 학생이 대학진학을 하지 않고 협동조합 쪽으로 자기 진로를 개척하고 있습니다. 학교에서는 이 학생의 선택을 존중하며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학생 이상의 노력으로 진로를 개척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만약 3기의 진로현황이 발표된다면 이 학생의 것도 포함하여 자랑스럽게 알리게 될 것입니다. 더불어 평소에 지혜학교에서는 경쟁을 부추기는 교육을 하지 않기 때문에 학생들 역시 이런 결과 때문에 소외감을 느끼지 않습니다. 오히려 성적이 잘 나왔다면 내 일처럼 기꺼이 축하해주는 문화가 이미 정착되어 있습니다.
9. 지혜학교는 철학과 인문학을 중심으로 가르치는 학교입니다. 그리고 앞서도 말씀드렸듯 학교의 철학과 특성상 지식교육에 소홀하지도 않습니다. 당연한 결과로 졸업생의 대부분은 대학진학을 희망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학벌(學閥)이나 학력(學歷)이 아니라 ‘학문의 실력이나 학문을 쌓은 정도’를 뜻하는 학력(學力)에 대한 필요 때문입니다. 지혜학교의 6년으로는 학생들의 지적 욕구를 만족시키지 못할 뿐만 아니라, 세상을 대하고 학문을 하기 위한 기반을 닦는 정도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6년간의 교육으로 배울 것은 모두 배웠다거나 가르칠 것은 모두 가르쳤다는 것은 오만한 일입니다. 오히려 지혜학교에서는 평생 배우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대학의 유의미성에 주목하게 됩니다.
10. “위의 결과는 지극히 정상적인 교육을 한 지혜학교 교육의 ‘하나의’, 그리고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결과라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계량화 되지 않기 때문이지요. 교사로서 확언하건대 학생들은 위의 결과, 즉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게 된 것보다 훨씬 더 큰 내적인 성장을 이뤄냈기 때문입니다.” 이 인용은 게시글의 가장 마지막에 있는 글입니다. 지혜학교의 교사로서 우리가 진정으로 주목하는 것은 ‘학생들의 내적인 성장’입니다.
11.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게시한 이유는 글에서도 언급했듯이 많은 사람들의 관심 때문입니다. 이는 학벌없는사회를 위한 광주시민모임에서는 알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관심도 없는 영역이겠지만, 대안교육계에서는 지혜학교를 들여다보는 중요한 한 지점입니다. 과연 우리들이 내건 교육철학이 실현 가능한가에 대한 것입니다. 그래서 게시글에서는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지혜학교의 이런 교육철학이 과연 어떤 결과를 나타내 보일까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관심 중의 하나는 과연 이런 교육을 통해서도 ‘대학입시’가 가능할까 하는 현실적 관심일 것입니다. 이는 지극히 온당한 관심이고, 학교 차원에서도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었던 점입니다.”
이 게시글은 이런 관심에 대한 하나의 보고입니다.
12. 학교 홈페이지에 있는 글을 읽으면 누구라도 ‘요청서’에서 제시한 것과 같은 말을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요청서의 요청이 오독과 자의적 해석에 의한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 아래와 같은 우리의 입장을 다시 밝힙니다.
13. 앞의 글과 연관시켜 볼 때 “글과 관련해 원만한 해결책을 찾고자 면담을 요구 드립니다.”라는 요청서 마지막 문구는 지혜학교는 정의롭지 않은 일을 저질렀고, 이에 대해 시민모임에서는 정당하게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는 뉘앙스를 강하게 풍기고 있습니다. 이것은 지혜학교의 이야기를 들어보지도 않고 오독과 자의적 해석에 근거한 주장을 가지고 지혜학교를 정죄(定罪)하고 판단하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게시글에 대한 설명을 요청하는 것도 아니고, ‘원만한 해결점’을 찾는다는 것이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14. 이런 태도는 ‘학벌없는사회를 위한 광주시민모임’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한국의 교육에 문제를 느껴 직접 몸으로 뛰고 있는 대안교육계와 그 현장 중 하나인 지혜학교를 대하는 온당한 태도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큰 틀에서 보았을 때 ‘동지’라고 할 수 있는 다른 존재에게 납득하기 어려운 것에 대한 설명을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일단 정죄하고 ‘원만한 해결점을 찾고자’ 면담을 ‘요구’하는 것은 지나치게 오만한 태도일 것입니다. 심히 유감을 표합니다.
15. 이런 ‘면담 요구’에 대해 우리는 이 요청서를 작성한 담당자인 박고형준씨에게 교장이 전화를 걸어 다음과 같은 제안을 하였습니다. 이번에 이런 문제제기를 한 것을 고맙게 받아들인다, 요청서에서 제기한 문제는 지혜학교의 철학과 관련하여 이야기할 수 있는 문제이지 단지 그 글을 내릴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는 아니다, 또한 이 뿐만 아니라 광주 지역사회에 지혜학교에 대한 여러 오해들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왕에 시민모임에서 요청서를 보낸 것을 계기로 삼아 이런 여러 문제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논의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그리고 시민모임의 몇 사람과의 면담이라는 방식보다는 좀 더 큰 자리에서 여러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심포지엄이나 토론회 같은 자리를 마련하자고 제안했습니다.
16. 6월 23일(월)의 전화통화를 통한 제안에 이어 공식적으로 이 편지를 보내드립니다. 이는 지혜학교의 공식적인 입장입니다. 학벌없는사회를 위한 광주시민모임과 지혜학교가 공동으로 홈페이지에 올린 게시글에 대해 토론을 하는 자리를 마련할 수 있기를 희망 합니다
2014년 6월 24일 지혜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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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학교의 졸업생 진학현황 공개에 관한 면담요청서
학벌없는사회를 위한 광주시민모임에서 확인한 바에 따르면, 지난 해 지혜학교 홈페이지 공지사항에 관리자가 <졸업생 진학현황 안내(최종)>이란 게시글을 작성했습니다. 자세한 내용을 들여다보면 지혜학교 졸업생들의 상급학교 진학 결과를 홍보하면서 학교명과 합격자 명단(성)을 표기하였고, 이 글을 올리는 이유에 대해 설명하였습니다.
설명 내용의 일부이긴 하지만, 해당 학교는 ‘폭 넓은 독서를 통한 인문적 소양을 기르고, 철학적 비판의식을 성장시키는 것이 오히려 대학입시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핵심적으로 강조했습니다. 이는 보다 많은 입학생을 유치하고, 재학생과 학부모의 자긍심 및 자신감을 고취시키려는 합리화적인 행위라고 보여 집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대학 중심의 진학 홍보는 이른바 대학의 진학을 가문의 영예나 출신학교의 자랑으로 인식하여 널리 홍보해 온 우리 사회의 오랜 관행으로 자리 잡으면서, 출신학교 뿐만 아니라 때로는 마을, 동창회, 종친 등이 주체가 되어 특정학교 합격 홍보를 하기도 합니다. 더욱이 최근에는 고등학교뿐만 아니라 대안학교까지 특정학교 합격 홍보물 게시 관행이 확대되는 양상을 보입니다.
그러나 학교가 나서서 특정학교 합격을 홍보하는 것은 학교의 주장과 같이 일부 순기능이 있다고 하더라도 한편으로 상급학교에 진학하지 않은 학생들에게 소외감을 줄 수 있어 교육적인 측면에서도 바람직하지 않고 결과적으로 학벌주의를 부추길 우려도 있습니다.
학벌주의는 동일한 단계의 교육을 받았다 하더라도 학교의 종류, 학교이름, 학과 등의 사회적 위신에 따라 다른 가치가 부여되는 것으로 심하게는 능력과 상관없이 출신학교에 따라 사회.경제적으로 구분하고 배제하는 사회적 현상입니다.
따라서 학벌주의가 심화될수록 본인의 능력을 개발하기 위한 자기개발보다는 이른바 '대학교'에 입학하기 위한 경쟁에 몰두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학벌주의에 의한 '대학교'선호 현상은 개인의 역량이나 능력에 따른 인력채용과 운용을 저해할 뿐 아니라 인적자원의 활용을 왜곡시켜 기업 및 국가 경쟁력 강화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교육기본법 제2조 (교육이념)에 교육의 목적에 관하여 '모든 국민은 인격을 도야하고 자주적 생활 능력과 민주시민으로서의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하여 인간적인 삶을 영위하게 하고 민주국가의 발전과 인류공영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 이바지함'이라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공교육 뿐 만 아니라 대안교육 현장의 교육자들에 의해 특정학교 합격 홍보물 게시가 행해지는 것은 위와 같이 교육기본법이 제시하는 교육의 이념에도 부합하지 않습니다.
한 사람의 가능성을 판단하는데 학력이나 학벌은 하나의 참고자료일 뿐임에도 학력, 학벌에 의한 차별은 그 사람이 가진 다른 다양한 가능성을 검증받을 기회마저 차단해버리게 됩니다.
이에 우리단체는 지혜학교의 특정학교 합격 홍보물 게시가 우리 사회에 발생하는 학력, 학벌 차별의 핵심적 원인은 아니지만, 우리 사회에서 관행적로 이루어지면서 차별적 문화를 조성할 우려가 있다고 보아 그 관행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있으며, 아래와 같이 요구 드립니다.
- 아 래-
지혜학교 홈페이지에 게시된 <졸업생 진학현황 안내(최종)> 글과 관련해 원만한 해결점을 찾고자 면담을 요구 드립니다. 면담일정은 학교 측에서 일정을 정해 안내해주시기 바랍니다.
전화 : 070-8234-1319, 이메일 : antihakbul@gmail.com
학벌없는사회를 위한 광주시민모임
2014. 6. 18